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이주아동의 인권이 외면받고 있다. 인권위는 17일 오후 5시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보장을 위한 정책권고의 건'을 재상정한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당초 지난달 20일 제4차 상임위원회에 처음 상정됐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권위에서 논의가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합법적 체류자격을 상실한 외국인인 탓에 법적 신분이 불안하다.
이번에 인권위에 상정된 체류보장 권고 안건에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익을 고려해 체류자격 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구제대책 상시 제도화 등을 법무부에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사소통 문제로 각종 서류 준비에 어려움이 있거나 신청 비용 및 범칙금 납부 문제, 체류 기간 요건 충족 문제, 가족 해체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체류자격 신청률이 저조하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무부가 2021년 구제대책을 발표하고 2022년 대상 요건도 완화했지만 체류자격을 부여받은 이주아동 수는 2025년 1월 기준 1131명에 불과하다. 현재 출입국통계로 파악되는 만 19세 이하 전체 미등록 이주아동 6169명의 18.3%다. 즉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아동 수가 5000명이 넘는다는 말이다.
심지어 통계에 미처 잡히지 않은 미등록 이주아동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이 구제대책이 이달 31일에 종료된다는 점이다. 법무부가 구제대책 시한을 연장하는지에 따라 5000여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운명이 불과 2주 만에 갈리게 될 것이다.
법무부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인권위에 의견을 요구한 시한은 지난달 14일까지였다. 그러나 인권위가 처음으로 안건을 상정한 날은 그로부터 6일이나 지난, 지난달 20일이었다. 이미 시한을 넘긴 늑장 처리인데도 인권위는 느긋했다. 세 차례에 걸친 상임위 회의에서도 처리가 되지 않자 결국 지난 7일 전원위원회에까지 올라왔지만 일부 인권위원들은 당시 "왜 상임위 안건이 전원위에 오르냐"고 반발하며 논의를 거부했다.
인권위 사무처는 "지자체와 법무부에서 인권위 권고 내용을 기다리고 있다"며 "시급한 사안이라 최대한 빨리 의결을 진행하기 위해 상정됐다"고 설명했다. 남규선 상임위원도 "상임위에서 처리하지 못한 안건을 바로 이어서 전원위가 의결한 전례가 있고, 시간을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 다음 상임위를 기다릴 수 없어 전원위에 상정했다"고 말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상임위 안건을 위원장이 독단으로 전원위에 올리는 것은 인권위 규칙에 위배된다며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남 위원은 "상임위 무력화는 김 위원이 하고 있다"며 "2월 27일 상임위에서 혼자 30분 동안 의사진행발언하고 퇴장했고 지난 6일에도 그랬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이 상임위와 전원위를 '보이콧'하면서 파행을 주도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송두환 전임 인권위원장 시절부터 김 위원은 인권위 운영이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연속적인 회의 파행으로 처리되지 못한 안건들은 하염없이 다음 회의로 밀릴 뿐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있듯, 인권 구제도 적기를 놓치면 2차 가해나 다름없다. 인권 보호 최전선에 있는 인권위가 '식물 기구'가 되면 그 피해는 오롯이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등록 이주아동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인권위가 이번에도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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