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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즉생, 독한 삼성인 돼라" 이재용 회장, '이건희 스타일'로 위기 돌파 모색하나(종합)

조은효 기자,

임수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3.17 16:46

수정 2025.03.17 18:07

삼성 전 계열사 2000여명 임원교육서
이재용 회장, "사즉생" 메시지 전달
특급인재 확보, 기술 초격차 주문
임원 수시인사 예고...주가 5.3% 상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뉴스1

[파이낸셜뉴스]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해 '사즉생(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산다)'의 각오로 과감히 행동할 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임원을 향해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고강도 경영쇄신을 예고했다. 이 회장은 쇄신책의 일환으로 크게 △특급 인재 확보 △기술 초격차 전략 재가동을 지시하며, △임원 수시 인사 △신상필벌 원칙을 제시했다. 이 회장이 '사즉생'까지 언급한 것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 지연, 파운드리 사업 부진, 시스템 반도체 고전 등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초격차 삼성'이라는 타이틀이 위태로워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이 '직설화법'으로 임원 수시 인사, 일명 S급 인재 유치 등을 언급한 것은 고 이건희 회장의 위기돌파 방식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의 '사즉생' 발언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종가대비 5.3% 상승했다.

■이재용 회장,'이건희 스타일'로 인사 칼 뽑아들었다
17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한 일명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이란 명칭의 임원 교육에서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재 삼성은 2016년 이후 9년 만에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삼성 60개 계열사 임원 2000명이 순차적으로'삼성다움'을 주제로 일종의 '정신 재무장'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인공지능(AI) 등 기술 격변기, 삼성이 1위 기업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냉정히 짚어냈다. 이 회장은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우리의 오랜 원칙"이라며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는 고강도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 "(TV·스마트폰·가전 등을 포괄하는)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제품의 품질이 걸맞지 않다" 등 삼성전자의 각 주요 사업부를 직접 언급하며 질책했다. 이 회장이 사장단이 아닌 전체 임원들에게 사업부별 위기를 직접 지적한 것은 처음이다.

이 회장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다.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오라"고 초격차 전략 가동을 위한 인재 확보를 주문했다. 삼성 안팎에선 전에 없이 발언의 강도가 세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메시지로 유명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이 회장이 임원 수시 인사를 언급한 것 역시, 과거 2011년 고 이건희 회장이 경영복귀 후 주로 구사했던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23년 10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발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3년 10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발언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한 삼성인'....초격차 전략 수 차례 강조
이번 임원 교육에서 주목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독한 삼성인'이다. 삼성은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원들을 향해 고강도 쇄신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메시지는 앞서 연초 사장단 회의 메시지를 전체 임원들에게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선 반도체가 선대 회장 때는 이렇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며 "유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만큼 임원들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 범용(레거시) 메모리의 부진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납품 지연 등으로 지난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올해 1·4분기 실적 전망도 긍정적이진 않다.
삼성전자의 1·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는 5조11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5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임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