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가상계좌' 청소년 불법 도박 통로 우려…'대응책 미미'[초점]

뉴시스

입력 2025.04.02 16:30

수정 2025.04.02 16:30

도박 자금 세탁·유통 도구 악용 청소년, 웹툰·OTT 등 도박 사이트 노출 35만개 가상계좌 통해 5조3000억 유통 금융당국 방관 도마…감독 강화·책임 추궁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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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이덕화 기자 = 가상계좌가 불법 도박 자금 세탁 및 유통의 주요 도구로 악용되면서 청소년을 도박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원주의 한 신협에서 발급된 가상계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소년을 불법 도박 사이트로 유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융 시스템의 허술함과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수치만 살펴보아도 그 심각성은 명백하다.

국회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개월 동안 해당 신협에서 발급된 35만개의 가상계좌를 통해 약 5조3000억원이 유통됐다.

이는 강원랜드의 연간 매출보다 4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합법적이라면 경이로운 일이겠지만 불법적이라면 이는 심각한 사회적 위협이다.

가상계좌는 본래 공과금 납부 등 제한적 용도로 사용되도록 설계된 도구다.

그러나 일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들은 가상계좌를 불법 도박 조직들과 연계해 자금 세탁, 도박 자금 유통의 수단으로 전략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웹툰이나 온라인동영사서비스(OTT) 콘텐츠를 접하며 불법 도박 사이트에 24시간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주의 한 신협에서 발급된 가상계좌 홍보 사이트는 '환전계좌 앱으로만 입금'이라는 구체적인 안내와 함께 직접적인 도박 참여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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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번 사건만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올해 초 1조원 규모의 불법 도박 자금 세탁 사건에서도 가상계좌와 가상화폐 거래가 이용됐다. 불법 사이트 112곳에서 판돈을 모아 대포통장을 활용해 자금을 세탁한 전직 축구선수 사건은 원주의 사례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2018년 한국 금융위원회 보고서에서는 공과금 납부용 계좌의 불법 도박 자금 세탁 관련 우려를 명시했다.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제대로 된 개선책은 없었다.

이러한 반복적 사건들은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방관과도 연결된다.

금융감독원은 현재까지 해당 신협의 가상계좌 불법 사용에 대해 형사적 처벌이나 실질적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불법 도박과 자금 세탁을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원주의 한 신협은 가상계좌 발급을 일시 중단하며 문제를 회피하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급을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불법 자금 유통에 가담한 금융기관과 결제대행사는 사실상 범죄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규탄했다.

가상계좌가 반복적으로 범죄에 악용되고 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하는 금융당국과 관련 금융기관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적어도 국경을 넘어 발생했던 대만 암호화폐 자금 세탁 사건에서는 범죄조직이 적발돼 실질적인 조치가 내려졌는데, 한국에서는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반복되며 대응책은 여전히 미미하다.

청소년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을 위해 금융당국은 더 이상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산업 구조적 허점을 방치한 채 문제를 간과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와 청소년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강력한 조치를 향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당국의 방관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무책임으로 읽힌다"며 "형식적인 대응이 아닌 실질적인 감독 강화와 책임 추궁이 이뤄질 때 비로소 반복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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