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헌정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된 윤석열 전 대통령. 그의 몰락이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윤 전 대통령이 '권력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골 검사'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아홉 번의 고배 끝에 늦깎이 검사로 임용된 그는 평검사 시절부터 살아 있는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실세였던 박희원 경찰정보국장을 구속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법정에 세우고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 씨까지 기소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파헤쳤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尹 만든 한마디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면모를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윤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날개를 달아준 건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였다. 문 전 대통령은 그를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초고속 승진시키며 '적폐청산'의 선봉에 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며 보수 진영 붕괴의 주역이 됐다.
'조국 사태’ 이후 文정부와 전면전…"장관의 부하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의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과의 갈등이 본격화됐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눈 수사들이 이어지면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통해 윤석열 사단을 대거 교체했고, 검찰총장의 직속 수사를 막으면서 윤 전 대통령을 사실상 '식물총장'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까지 내려지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취임한 검찰총장이 2년도 채 안 돼 정권의 최대 정적이 된 셈이다.
정치 입문 8개월 만의 대권…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이에 맞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정권과의 정면 대결을 택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는 보수 진영의 구심점이 됐고, 정치 입문 불과 8개월 만에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썼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강골 검사'에게 국정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정치에 요구되는 유연성과 타협 대신 끝까지 '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검사적 접근 방식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끝없는 충돌과 분열로 이어졌다.
갈등의 끝 45년 만에 계엄…결국 파면으로
윤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갈등은 점차 극단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이 22건의 탄핵소추안과 27건의 특검법을 쏟아내자 윤 전 대통령은 25차례 거부권으로 맞섰다. 급기야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라는 극약처방을 꺼내 들었으나,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가 됐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지난해 12월 3일 대국민 담화)이라고 호소했지만, 그 결단은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해 권력의 정점으로 이끈 민주당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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