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송 사람들은 자주 왔어요. 어려서부터 소풍을 다 여기로 온 거야. 그러니까 청송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어릴 적 추억의 고향 같은 곳이죠"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지난달 28일 만난 청송 보광사 주지인 무구 스님은 잿더미로 변한 만세루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만세루는 조선 세종 때 세워진 누각으로, 자그마치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초대형 '괴물 산불'을 버티지 못하고 전소됐다. 이번 산불로 수많은 문화재가 우리 곁을 떠났다. 만세루를 비롯해 청송의 옛 고택들도 화마의 피해를 당했다.
현장에서 '문화재를 왜 지켜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같은 고민에 어느 정도 해답을 던져준 것은 역시 현장이었다. 무구 스님의 말처럼 만세루라는 공간은 수백 년간 지역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청송 사람들이 '공통된 기억'을 공유한 공간이 바로 만세루인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통해 주민들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묶일 수 있었다.
역사학에선 '역사공동체'라는 개념이 있다. 역사공동체란 역사적 경험이나 기억,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우리가 문화재를 지켜나가는 이유도 크게는 '한국', 그보다 작게는 '청송'이라는 '역사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이번 문화재 피해가 뼈아픈 이유는 바로 이같은 '역사공동체'를 묶어주는 일종의 끈 자체가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재 중 사찰이나 고택 등은 목조로 지어졌고, 위치 또한 산에 있다. 그렇기에 더욱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빠르게 조치하더라도 불을 끄는 게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8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문화재 방재'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매년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괴물 산불'같은 광범위한 재난 앞에선 여전히 문화재 보호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산불 사태는 그동안의 문화재 방재 정책이 충분했는지 되돌아볼 기회다.
그간 전 국민의 관심은 모두 헌법재판소로 쏠려 있었다. 자칫 이번 산불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교훈이 탄핵 정국 탓에 가려져 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각지에 퍼져 있는 문화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양새 같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를 잃고 나서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것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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