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무너지는 공직사회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06 19:19

수정 2025.04.06 20:08

김태경 전국부 부장
김태경 전국부 부장

직무대행 체제를 맞고 있는 행정안전부의 속내가 복잡하다. 윤석열 정부 3년이 지나는 동안 1년 정도는 장관이 없는 사실상 행정공백 속에 부처 위상과 자존감에 치명타를 맞고 있다. 새로운 정책 추진은 언감생심이다.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장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단순 현업에만 몰두하는 실정이다.



비단 행안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상당수 정부 부처가 행정공백에 따른 정책 실종과 업무마비 등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탄핵소추로 인해 발생하는 이 같은 행정공백은 정부의 주요 지도자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어 행정체계에 대혼란이 발생한다. 우리는 두 번이나 이런 사태를 겪고 있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무대행 체제가 가동된다 하더라도 국정 운영에서 행정공백 차질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외교 및 경제적 정책결정의 지연은 물론 국가의 주요 정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정권교체에 따른 기회비용 상승도 덩달아 커질 조짐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던 대부분의 정책이 또다시 흔들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초래되는 정책적 혼란과 예산 배분의 왜곡 등의 문제도 수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특정 부서의 예산이 축소되거나 새로운 정책을 위해 우선적으로 예산이 배정됨에 따라 기존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할 우려도 상존한다. 이에 따른 인력관리의 어려움도 한층 커진다. 정책 변동 과정에서 필요성이 줄어든 사업 담당자는 다른 부서로 재배치될 수도 있고, 적응 문제나 효율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정권 변화로 인해 부처 간 정책 방향이 엇갈리는 경우 협력 관계가 약화되며 목표 달성에 장벽으로 작용한다.

비정상적 직무대행 체제를 불러온 이유는 여럿이지만 이를 책임질 사람도, 기관도 마땅히 없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가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무감각하다. 공직자들은 주어진 권한과 지위에만 열을 올릴 뿐 책무에 대해서는 도덕적 불감증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일부 고위직 관료들은 이 틈을 이용해 차기 기회를 모색하거나 또 다른 권력에 줄서기 바쁘다.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폐해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권한만 누릴 뿐 책임은 실종됐다.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은 없고 책임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가득하다. 책임을 져야 하는 소위 '윗선'에서는 남을 탓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원칙과 소신이 실종된 탓이다.

무책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탄핵 국면에서도 정부 부처는 정책 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것이 주어진 책무다. 자기 직무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과 관련,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사전에 이를 알기 어렵다는 취지로 변명만 일삼고 있다. 그동안 대미외교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한 것치고는 궁색한 변명이다.

외교는 국익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다른 나라의 정책 변동을 유심히 살피고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단순히 외교관이라는 경력만 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외교의 중차대한 책무를 고려하지 않은 직무유기라 해도 무방하다.

한국 사회는 어느덧 이런 변명과 무책임의 홍수 속에 갈등과 분열이라는 시대적 위기를 맞고 있다. 공직자가 사회의 책임과 국민 보호라는 대원칙은 고사하고 자기 이익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공직을 생각할 때 그 나라의 운명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기변명이 별다른 저항과 비판도 없이 그대로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권력에 너무 열과 성을 바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강해져서일까. 더욱이 무비판적으로 현실을 추종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 불가다.
공직사회의 대각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