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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대학자 왕인 박사, 日은 악어대신사…동물명 둔갑"

뉴시스

입력 2025.04.08 11:08

수정 2025.04.08 11:08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바로잡아야"
[울산=뉴시스] 왕인(王仁) 박사 초상화.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왕인(王仁) 박사 초상화.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 제공) 2025.04.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일본은 백제 때 대학자였던 왕인 박사(王仁 博士) 신사(神社)를 악어(鰐) 신사로 둔갑시켜 전하고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8일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왕인 박사는 4세기 백제 백제 제14대 근초고왕(346~375년)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현주소) 출신의 대학자다. 역(易), 시(詩), 서(書), 예(禮), 춘추(春秋 )등 경학(經學)에 통달한 오경박사였다.

일본 오진 천황(應神天皇)은 왕인 박사의 유명세를 알고 초빙했다. 일본은 그 당시 글이 없었다.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시대였다.

왕인 박사가 가지고 간 논어 10권과 천자문 한권으로 쓴 것이 일본 최초 역사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였다. 최초 한자를 배운 사람이 오진 천황의 아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572-621년)이다. 오진 천황은 이를 감사히 여겨 왕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동아시아 최초 박사 1호였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은 백제 사람 중 왕인 박사를 제일 좋아하고 그를 섬기는 집단이 많고 무덤 참배도 한다. 요즘은 중국인과 유럽인도 찾는다고 한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이 왕인 후손 등 여고생 1000여명을 초빙해 순천 매산여고와 교류했다. 일본은 비록 조선사를 많이 왜곡하지만 국내보다 자부심을 느끼고 교육한다.

[울산=뉴시스] 왕인 박사 신사를 악어 신사로 표기한 모습.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기 소장 제공) 2025.04.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왕인 박사 신사를 악어 신사로 표기한 모습. (사진=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기 소장 제공) 2025.04.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사가현 간자키시 간자키쵸(佐賀縣 神埼市 神埼町)에 있는 왕인 박사 신사 이름을 '악어대신사'(鰐大神社)로 표기하고 있다. 전남 영암에서 일본으로 가는 길(백제 항로)은 도착지가 간사키이다.

오진 천황은 도착지에 왕인 신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왔다. 명치 신정부가 천황의 신사, 국가 신사 외에는 신사를 없애도록 할 때 무섭고 악한 악어 신사로 바꿔버렸다.

왜 악어 신사로 했을까. 왕인(王仁)을 일본어로 '와니'라 한다. 악어(鰐魚)도 '와니'라 부른다. 동음이자(同音異字)여서 교묘하게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와니 박사가 없었다면 일본은 지금까지 글이 없었다며 숭배한다.

사가현 간자키시는 왕인(와니) 신사를 와니(鰐) 신사로 둔갑시킨 셈이다. 원래 왕인 박사 이름 간판을 내리고 악어대명신(鰐大明神)으로 달아놨다. 왕인 박사의 유래를 새긴 돌비석을 신문(神門) 옆에 세우고 악어신과 왕인의 신을 같이 섬기고 있다.


김 소장은 "흉한 동물명의 신사로 한 것은 명치 혁명의 주동자들이 규슈지방 인물이기 때문이다. 간자키시 관광문화과에 항의하니 선조가 한 일이어서 여러 차례 논의했으나 변경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영암군은 물론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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