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바이 아메리카·바이 유러피안… '딜레마'에 빠진 K방산[관세전쟁 본격화]

이동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08 18:07

수정 2025.04.08 18:21

美로 빨려들어가는 일자리 (하)
美·EU 중심 역내생산 기조 확산
국내 방산기업들 현지 생산 속도
수출 늘지만 국내 고용 줄어들어
국내 기술·부품 연계한 전략 필요
바이 아메리카·바이 유러피안… '딜레마'에 빠진 K방산[관세전쟁 본격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카(자국 산업 우선주의)' 정책 강화에 이어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도 '역내 생산' 기조가 확산되면서 K방산이 수출 확대와 국내 고용 유지 사이 딜레마에 직면했다. 해외 조달시장 진입을 위한 '현지 생산'이 사실상 필수로 떠오르면서, 국내 산업 기반 약화와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업계는 국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균형 잡힌 현지화 전략'이 새로운 생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에

8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방산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바이 유러피안(유럽산 무기 구매)'정책을 본격 추진 중이다. EU는 오는 2030년까지 역내 무기 구매 비중을 65%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총 1500억유로(약 239조원) 규모의 공동조달 지원책도 마련했다.

프랑스·독일·영국·폴란드 등 주요국은 합작 생산과 공동 개발에 속도를 내며, 유럽 내 독자적 공급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과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안보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조달시장 참여 조건으로 자국 내 고용 창출과 생산기반 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며, EU 또한 국방 예산의 역내 환원을 전제로 공동 조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 방산기업들도 미국과 유럽 현지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앨라배마에서 탄약·부품 공장을 운영 중이며, 루마니아에는 오는 2027년까지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차의 생산·정비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록히드마틴과 20년 넘게 글로벌 공동 마케팅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대로템은 K2 전차 2차 계약을 앞두고 폴란드 내 생산 기반 마련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은 국내 공장 가동률 저하와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제조업 고용자는 439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만6000명 감소했다.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해 7월 이후 7개월 연속 줄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방산은 대표적인 제조업 기반 산업인 만큼, 현지화가 장기적으로 국내 일자리 공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구조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전략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글로벌 조달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현지 조립이나 합작 생산은 사실상 필수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국 내 생산을 전제로 한 조달 조건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라며 "유럽과 미국 모두 현지 생산 없이는 실질적인 수출이 어려워 국내 기업들도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완전한 현지 생산보다는 국내 기술과 부품을 연계한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방산 수출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 외에도 기술 신뢰도와 안보 협력이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전량 현지 생산보다는 기술 협력이나 현지 조립 등 중간 해법을 통한 대응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모든 생산시설을 국내에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동유럽은 핵심 설계 역량을 기반으로 현지 생산을 통한 완제품 수출의 거점으로 삼고, 서유럽에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인공지능(AI)·드론 분야 등 첨단 기술의 공동개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가·기술·조달 안정성 등 여러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방위산업의 특성상 미국이 외국 파트너를 전면 배제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도 한국은 우수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신속 납기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며 "현지 조립과 기술 협력을 병행하는 '중간 해법'으로 양국 모두에 실익을 주는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