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왕자'가 (극 중)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경험한 뒤 염세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구의 사건·사고를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환멸도 짙어졌을 것 같고요. 그래서 '흑화'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최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만난 창작 뮤지컬 '라이카'의 한정석 작가는 순수의 아이콘 '어린 왕자'가 인간을 향해 혐오감을 쏟아내는 청년 캐릭터로 돌변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달 14일 개막한 '라이카'는 1950년대 미·소 냉전 시대,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파견된 지구 최초 우주 탐사견 라이카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라이카는 사실 1957년 11월 3일, 발사 5~7시간 만에 고열과 공포, 스트레스에 휩싸인 채 쇼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라이카는 우주의 작은 행성인 B612에 불시착한다.
'라이카'가 무대에 오른 지 20여 일. 관람객들 공연 후기를 살펴보면, 배우들 연기력과 음악 등에 대한 호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토리 흐름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관람평도 적잖다. 특히 어린 왕자의 갑작스러운 '흑화'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여럿 보인다.
이날 동석한 이선영 작곡가는 이와 관련해 "어렸을 때 세상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던 어린 왕자가 자라면서 흑화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며 "나만 봐도, 어렸을 때 보던 세상과 지금 바라보는 세상의 색깔이 상당히 많이 변했다"고 했다.
'인간답다'는 건 뭘까
한정석 작가는 이 작품의 대본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어린 시절, 라이카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라이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 '우주에서 든든한 친구를 만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접목한 이유이기도 했다.
'라이카'는 공존·책임·희생 등 여러 질문거리를 던진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지 묻자, 박소영 연출은 '인간다움'을 꼽았다.
"이 작품은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질문은 '인간답다는 건 무엇인가, 더 나은 인간에 대한 방향성이라는 건 무엇인가'였어요."
공연계 흥행 보증 수표
한정석 작가·이선영 작곡가·박소영 연출, 이 세 사람은 '한이박' 트리오로 불린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등 이들이 의기투합한 작품들이 각종 상을 휩쓴 데다 관객의 큰 사랑까지 받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공연계 흥행 보증 수표'다.
이 같은 별명에 대해 한정석 작가는 "처음엔 그저 공연이 안정적으로 유지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며 "'레드북'의 경우 사실 삼연 때부터 흥행을 거뒀다"고 했다. 이어 "'보증 수표'는 나쁜 말은 아니니까 정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웃었다.
서로의 강점에 관해 묻자, 박 연출에 대해선 "팀을 하나 되게 만드는 리더십', 이 작곡가를 향해선 "성실·꾸준함의 결정체", 그리고 한 작가를 두고는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0년 넘게 쌓아 올린 이들의 신뢰가 단단하게 느껴졌다.
지구 최초의 우주 탐사견 '라이카' 역은 박진주·김환희·나하나, '왕자' 역은 조형균·윤나무·김성식이 열연 중이다. 이외에도 한보라, 진태화 등이 출연한다.
'라이카'는 오는 5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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