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포츠일반

[기자의 눈] 한국 배구의 '축복' 김연경을 떠나보내며

뉴스1

입력 2025.04.09 10:12

수정 2025.04.09 10:12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선수단이 김연경에게 헹가래를 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선수단이 김연경에게 헹가래를 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김연경이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김연경이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여자 배구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이어간 김연경. /뉴스1 DB ⓒ News1 송원영 기자
여자 배구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이어간 김연경. /뉴스1 DB ⓒ News1 송원영 기자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흥국생명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2025.4.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너무 힘들어서 안 할 것 같다."

김연경(37·흥국생명)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배구를 할 것인지"를 묻자 돌아온 답이 이랬다. 그는 "3차전에 끝났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며 특유의 농담을 던지면서도 "배구가 마지막까지 나를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다시 한다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20년간 쉼 없이 코트를 누볐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풀세트를 꽉 채웠기에 김연경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건, 김연경은 한국 배구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김연경은 지난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정관장과 2024-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최종 5차전에서 팀 내 최다 34점을 올리며 3-2(26-24 26-24 24-26 23-25 13-15) 승리를 이끌었다.

역스윕 위기에 몰린 팀을 구한 김연경은 현역 마지막 시즌을 우승으로 장식하고 개인 4번째 최우수선수(MVP) 트로피와 함께 코트를 떠나게 됐다. 그는 아마 데뷔 시즌이던 2005-06시즌에도 5차전 승부 끝에 우승과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던 사실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지 모른다.

김연경은 남녀를 통틀어 한국 배구가 배출한 가장 빼어난 선수였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서도 그 기량을 인정받았고, 리그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해 배구의 대중적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데뷔 때부터 '센세이션' 했던 그였다. 그는 루키 시즌 정규리그에서 득점, 공격, 서브 타이틀을 휩쓸었다. 신인상과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김연경을 품에 안은 흥국생명은 단숨에 리그 최강팀이 됐다. 2006-07, 2008-09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고, 김연경은 해외 진출 이전까지 4시즌을 뛰면서 정규 리그 MVP와 챔프전 MVP를 각각 3회씩 받았다. 그야말로 '김연경의 리그'가 됐던 시기였다.

해외리그에서도 김연경의 활약은 계속됐다. 일본에서 2시즌을 뛰며 컵대회 MVP와 정규리그 MVP를 한 번씩 받았고, 이후 튀르키예로 진출해서는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전성기를 꽃피웠다.

단순히 기량만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김연경은 튀르키예 엑자시바시 시절인 2019-20시즌엔 주장으로 팀을 이끌기도 했다. 동양에서 온 '외국인선수'에게 선수단을 아우르는 주장 역할을 맡겼다는 자체로 의미하는 바가 컸다. 탁월한 경기력뿐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의 영향력도 대단했다는 이야기다.

김연경을 보유한 여자 배구 대표팀도 전에 없던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2012 런던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강을 달성했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땄다. 이런 호성적을 바탕으로 국제대회 '1부리그' 격인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 오랫동안 머물며 세계 강호들과 경쟁하기도 했다.

배구라는 팀 스포츠에서 이 모든 공을 김연경 한 명에게 돌릴 수는 없겠지만, 김연경 한 명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는 국제대회에서도 '베스트 7'을 여러 차례 입상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선 4위를 차지하고도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선수가 국내로 돌아온 2020-21시즌, 여자배구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30대에 들어섰지만 김연경의 기량은 여전했고,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경기를 '직관'하려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연경은 2021-22시즌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다음 시즌 다시 돌아왔고 마지막 세 시즌을 국내에서 치렀다. 복귀 이후 세 번이나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마지막 우승'을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끝내는 통합 우승과 챔프전 MVP를 다시 품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김연경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벌써부터 김연경의 은퇴 후 '한국 배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미 대표팀에서 그 공백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김연경이 물러난 여자 대표팀은 파리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고, 아시아 레벨에서도 고전할 정도로 전력이 약해졌다.

떠나는 김연경 또한 한국 배구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는 "대표팀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LA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망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많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육성해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김연경은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 지는 많은 분들이 고민하셔야겠지만, 나도 한국 배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했다.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연경은 "어린 선수들은 화려한,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하지만 그런 것보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기를 잘 다져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배구가 다시 김연경이 활약했던 시기의 중흥기를 재현할 수 있을까. 정답은 김연경의 마지막 말에 담겨있다.
이를 현실로 만들어야 할 배구인들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