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중단된 한미 정상 간 소통을 재개하면서 상호관세 협상에 물꼬를 텄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물론 방위비 등을 포함한 '원스톱 쇼핑'을 선호한다고 밝히며 우리 정부의 허를 찔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 카드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덕수-트럼프 한미 정상 간 첫 소통…'방위비 분담금' 주목
9일 정부에 따르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막대한 군사 보호에 대한 지불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그들(한국)은 내 첫 임기 때부터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군사적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지만, 슬리피(졸고 있는) 조 바이든(전 대통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 간 대화이기에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본인이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만든 게 왜곡됐다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며 "보도자료에 방위비 얘기는 없지만, 한미군사동맹 언급이 있는데 그 부분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이뤄졌으나, 한미가 증액 규모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 속 바이든 정부로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대규모 증액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한국을 '머니머신'이라고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약 15조 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부와 체결한 2026년도 금액 약 1조 5192억 원의 9배가 넘는 액수다.
관세·방위비 등 포함한 '원스톱 쇼핑'…정부는 '관세 협상' 치중
트럼프 대통령은 한 권한대행과의 통화 이후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과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원스톱 쇼핑은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무역적자 해소, LNG 수출, 알래스카 합작투자, 조선업 협력 등을 하나로 묶어 논의한다는 일종의 '패키지 딜'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협상을 다른 분야와 연계하려는 의중을 밝힌 거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방위비 분담금 협상 같은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미진하다는 점에서 관세 협상에만 치중하는 정부에 대한 지적도 많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조선업, LNG, 알래스카 합작투자 등에 대해) 한국이 먼저 언급했다"며 "관세가 조정될 수 있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미국 관세 조치 대응이 단판이 아닌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고 한 것이 원스톱 쇼핑에 대한 시각차 아니냐는 질문에 "시각차라기 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오픈돼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관세랑 방위비 패키지딜을 마련 중이냐'는 질문에는 "한 대행이 (어제 통화에서) 말한 건 관세와 방위비 패키지가 아니라 조선, LNG, 무역균형 등을 한꺼번에 말했다"고 답했다.
정부가 미국의 우선순위로 여겨지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또는 회피하듯 바라보는 모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결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핵심…범정부 TF 등 대응 모색해야
정부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재협상하자는 요청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가 관세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응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방위비 협상을 하는 건데, 이와 관련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안다"며 "범정부적인 TF 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현재 대통령이 없다 보니 대응책 모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당장 관세를 내리지 못한다고 해도 단기, 중기, 장기별로 대응책을 마련해 조금씩이라도 내려야 한다"며 "품목별, 업종별 관세 협상 등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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