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전지적 백남준 시점' 展... 그의 눈으로 '비디오 아트' 느끼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10 14:23

수정 2025.04.10 14:23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시 전경. 사진=유선준 기자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시 전경. 사진=유선준 기자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시 전경. 뉴시스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시 전경. 뉴시스

【용인(경기)=유선준 기자】 "시간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의 일부분을 붙잡아 공간에 배치하고 싶었어요."(백남준, 1986년 미국 뉴욕 'WNET' 방송국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선구자인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로 펼쳤던 본인의 예술적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관람객들이 백남준의 눈으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읽으며 그의 실험적 예술 공간에 다가가는 전시가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경기문화재단은 백남준이 생각했던 시간의 개념을 살펴보는 전시회 '전지적 백남준 시점' 전(展)을 내년 2월 2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지난 인터뷰 영상을 중심으로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시간의 개념을 다층적으로 다룬다.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2285점의 비디오 아카이브 중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국가에서 방영된 백남준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해 작품과 함께 상영한다.



또 리움미술관, 애경산업, 국립현대미술관, 브레멘 미술관 등에서 대여한 '천왕성', 'TV 피아노', '세 대의 카메라 참여' 등의 작품을 통해 ‘시간’에 대한 백남준의 사유를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백남준 예술에서 다뤄진 시간의 속성을 조명하고 시간의 폭넓은 가능성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비디오가 새로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한편, 비디오 예술가들이 추상적인 시간을 발견했다고 강조한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13개의 모니터에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변화하는 달의 모습을 담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는 시간에 대한 백남준의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설명하는 WNET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시간의 일부분을 붙잡아 공간에 배치하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을 선보일 당시 백남준은 음극선관 끝의 편향 장치를 움직여 전자기적 흐름을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하얀 달이 화면에 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이에 대해 백남준아트센터 측은 "달의 주기는 순환의 리듬을 담고 있는 자연적 시간이지만, 백남준의 '달'은 실재하는 달을 찍어서 재생한 게 아니다. 만일 달을 촬영해 보여준다면 정지한 순간이 아니라 변화하는 달과 지구의 움직임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며 "유일하게 백남준의 방식만이 얼어붙은 시간, 즉 영원히 멈춰진 시간을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남준 '랜덤 액세스 오디오 테이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랜덤 액세스 오디오 테이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랜덤 액세스 오디오 테이프(1963)'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마그네틱 테이프가 가진 물질성과 그 선형적 구조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가능성을 실험했는데, 그는 이 개념에서 시작한 우연성과 시간에 대한 실험을 비디오로 확장한 것이다.

전시관에서는 비디오를 그림에 빗대어 설명하고, 전자기술을 시연하는 등 생생한 백남준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촛불 TV', '자석 TV', '참여 TV',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TV 정원', '천왕성' 등 백남준의 실험적인 작품 약 10점도 백남준의 인터뷰와 함께 전시됐다.

백남준 '자석 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자석 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특히 대표작 '자석 TV(1965)'는 자석을 TV에 대고 움직이면서 내부 형광 물질과 전자빔이 충돌해 빛을 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TV 속 전자빔이 자석의 방해를 받아 자석 쪽으로 빨강, 초록, 파랑 삼색의 일그러진 화면이 추상적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관람객은 직접 자석을 움직여 매 순간 변하는 시각 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

백남준 '세 대의 카메라 참여'.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세 대의 카메라 참여'.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세 대의 카메라 참여(1969)'는 흑백 카메라 세 대에 연결된 텔레비전에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각각 텔레비전 내부의 빨강, 초록, 파랑의 전자빔을 통해 피사체를 비추고, 카메라와 텔레비전 사이에 신호를 맞춰주는 장비와 증폭기를 연결하여 세 가지 색이 텔레비전 화면에 합쳐져 나타난다.

이는 프로젝터와도 연결돼 벽면에 영사되며,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 놀이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돼 스스로 현실에 대한 인식과 표현을 되짚어보게 한다.

백남준 '참여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참여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참여TV(1963)'는 관객이 마이크에 전하는 소리를 불규칙한 패턴 이미지로 전환해 표시한다. 이 작품을 통해 리본 모양의 '댄싱 패턴'이 관람객 소리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변화시키는 움직임을 선보인다.

백남준 '천왕성'.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백남준 '천왕성'.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이밖에 '천왕성(1991)'은 위성 생방송으로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며 전지구적 소통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해와 달', '금성', '화성', '해왕성' 등으로 이뤄진 행성 연작을 통해 우주에 대한 비전을 펼쳐 보였다.

아울러 천왕성의 특징을 반영해 화려한 네온과 24개의 모니터를 통해 다채로운 영상을 보여주는데, 24개의 화면을 넘나드는 찬란한 영상들은 순간성과 영원성이 교차하며 우주의 시적 초상을 그려지게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상아 학예사는 "몽타주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시를 감상할 수도 있지만, 각 작품에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비교하며 시간의 다채로운 방향성을 경험할 수도 있다"며 "작품들은 빨리 감기와 되감기, 플러스 시간(기억)과 마이너스 시간(망각)이 흐르고 있는데, '삶에는 되감기가 없기에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백남준 작가의 가르침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내달부터 12월까지 백남준의 작품과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하는 랜덤 액세스 홀 상영회도 개최한다.
관람객이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