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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묶인 60%, 자유로운 2%: 테스토스테론의 숨겨진 진실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19 07:00

수정 2025.04.19 07:00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꽁꽁 묶인 60%, 자유로운 2%: 테스토스테론의 숨겨진 진실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2000년대 이후로 과학계와 의학계는 테스토스테론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성욕과 폭력성은 이 호르몬을 들여다보는 아주 작은 관점일 뿐이다.

특히 생리학적 역할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최근 20여년 간의 연구를 통해 테스토스테론은 배아(수정 후 첫 8주까지) 태아의 발달, 뇌의 발달, 적혈구의 발달에도 필수 역할을 하며, 여성의 배란을 촉진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근육을 생성하여 지방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나이가 들어서도 튼튼한 뼈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테스토스테론이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것도 임상을 통해 밝혀졌다.

캔자스의대 연구팀이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받은 평균연령 66세의 퇴역 군인 8만3000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남성호르몬 수치를 정상화하면 심장병 위험이 24% 낮아지고 뇌졸중 위험도 36%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이 폭력성보다도 사회성과 관련이 많다는 것도 여러 논문을 통해 증명되었다. 1996년 캐나다 연구팀은 6~13세의 소년의 사교성과 폭력성의 정도를 조사한 후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검사했다. 그 결과 예상과 달리 사교성이 좋은 소년들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고 폭력성이 높은 소년들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

젊은 남성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한 후 ‘최후통첩 게임’(경제학의 심리게임. 두 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에게는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안할 권리를 주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수락 혹은 거절할 권리를 준다. 수락하면 두 사람 모두 그만큼의 돈을 받지만,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못 받는다)을 하게 한 실험에서도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입받으면 더 과감하고 이기적인 제안을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공정하고 관대하게 돈을 나누겠다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또 불공정한 제안일 경우 거절하여 벌을 준 사람도 늘어났다. 테스토스테론이 남자를 폭력적이고 적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더 유연하게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테스토스테론에 대해 상식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 이상의 건강 호르몬이고 반사회적 호르몬이 아니라 사회적 호르몬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잉태의 순간부터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평생 필요한 생명 호르몬이기도 하다.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호르몬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테스토스테론이 곧 남성호르몬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남성호르몬을 총칭하는 용어는 ‘안드로겐’이다.

안드로겐은 3개의 육각 벤젠고리에 오각 탄소 링이 특이한 형태로 붙어있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척추동물의 성장, 발달,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스토스테론 이외에도 디하이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dehydroepiandrosterone·DHEA), 안드로스텐다이온(androstenedione), 안드로스텐다이올(androstenediol), 안드로스테론(androsterone),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ihydrotestosterone·DHT) 등이 있다.

그러면 이런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어떻게 조절될까? 호르몬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제어 시스템이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르몬 분비량이 너무 높아도 안되고 너무 낮아도 안된다.

테스토스테론 역시 마찬가지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컨트롤하는 인체 메커니즘은 두 가지다.

첫째는 ‘시상하부-뇌하수체-고환 축’이다. 시상하부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면 이것이 뇌하수체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 등의 생식샘자극호르몬을 분비한다.

이것이 혈액을 통해 이동하여 고환에 이르면 세포 내의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남성호르몬을 분비한다. 분비된 남성호르몬으로 인해 혈액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이 정보가 시상하부로 되먹임된다.

그러면 시상하부는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의 분비를 낮춘다. 그러면 뇌하수체도 관련 호르몬들의 분비를 억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낮아진다. 이러한 ‘시상하부-뇌하수체-고환 축’의 ‘네거티브피드백’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네거티브 피드백이란 출력량이 많아지면 입력량을 줄이는 조절 방식을 뜻하며 우리말로 ‘음성 되먹임’이라고 번역한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을 통한 조절이다.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은 주로 간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인데 성호르몬과 결합하면 이를 비활성 상태, 즉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이 테스토스테론을 꽁꽁 묶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단백질의 특이한 구조 때문이다. 두 개의 동일한 펩타이드 사슬이 길게 꼬여 있는 구조에 소수성 분자와 결합하는 부위와 스테로이드 분자와 결합하는 영역 등이 복잡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테스토스테론이 이 단백질을 만나면 손과 발이 꽁꽁 묶여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테스토스테론뿐만 아니라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에스트라디올 등의 여러 성호르몬이 이 단백질에 의해 비활성화된다. 고환에서 분비된 테스토스테론 중 약 38%는 알부민과 느슨하게 결합하고 약 60%는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과 단단하게 결합한다.

나머지 1~2%만이 결합하지 않고 자유롭게 혈액을 돌아다닌다. 알부민과 결합한 테스토스테론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테스토스테론은 성호르몬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과 결합한 테스토스테론은 성호르몬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체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즉, 고환에서 너무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만들어내면 그만큼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의 수치를 높여서 사용할 수 있는 성호르몬을 줄이고, 반대로 고환에서 만들어내는 테스토스테론이 적으면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의 수치를 낮춰서 사용할 수 있는 성호르몬을 늘리게 하는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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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