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98년 4월 13일, 프랑스의 앙리 4세가 낭트에서 역사적인 칙령을 발표하며 오랫동안 프랑스를 휩쓸었던 종교 전쟁의 불길을 잠재우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낭트 칙령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던 종교적 관용의 원칙을 확립한 중요한 문서다.
16세기 프랑스는 가톨릭과 개신교(위그노) 간의 극심한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렸다. 성 바르톨로매 학살과 같은 끔찍한 사건들은 양측의 증오를 더욱 깊게 만들었고, 왕권은 불안정했으며, 국가는 분열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왕위에 오른 앙리 4세는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종교적 화합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낭트 칙령에 따라 위그노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위그노들에게는 공직 진출의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 위그노는 가톨릭 교도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특별 법정도 설립됐다. 정치적 불안정을 고려해 위그노는 특정 요새 도시를 방어 목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었다.
낭트 칙령은 수십 년간의 종교 전쟁을 종식시키고 국가의 안정을 가져왔으며, 종교적 관용이라는 새로운 이념의 씨앗을 뿌렸다. 이는 이후 유럽의 종교 및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낭트 칙령이 완전한 종교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톨릭은 여전히 프랑스의 국교였으며, 위그노의 예배 장소는 제한적이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했다. 또한, 칙령의 내용은 가톨릭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낭트 칙령은 루이 14세에 의해 1685년 퐁텐블로 칙령으로 폐지되면서 짧은 평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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