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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끝에 남겨질 흔적… 죽는 것보다 더 두렵다"[글로벌 리포트]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13 18:31

수정 2025.04.13 18:31

고령자 중심 '생전계약 체결' 활발
장례방식·유품정리 등 미리 지정
사후 절차 자동 집행 수요 증가세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일본에서 '생전 계약'을 체결하는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개인이 사망 이후 자신의 장례 방식, 유품 정리, 납골지, SNS 계정 폐쇄, 반려동물 위탁 등 다양한 사후 절차를 사전에 정해두는 방식이다. 과거 유언장 중심에서 디지털 계약과 자동화 플랫폼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이 같은 흐름은 고독사 증가와 맞물려 있다. 13일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1인 가구 비율은 29.0%(2023년 기준)로 나타났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발견되는 무연고 사망자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행정은 기본적으로 생존자를 전제로 복지 서비스를 설계하고 있어 사망 이후의 절차는 민간에 위탁되거나 유가족이 없을 경우 처리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이로 인해 민간 주도의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들은 사망 사실이 확인되면 등록된 사후 절차가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설계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지털 유산 관리, 헌화 자동 신청, 사후 이메일 발송 등 기능도 다양하다. 일부 플랫폼은 인공지능(AI) 기반 유언 메시지 생성 등 신규 서비스도 도입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 요금은 항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인 장례 및 유품 정리 위탁 비용은 30만~50만엔(약 300만~5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디지털 유산 관리나 반려동물 처리 등을 포함하면 전체 계약 단가는 80만엔을 넘는 경우도 있다. 장기요양보험의 보장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전액 자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의 접근은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흐름은 장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전통적인 가족장례 비율은 10년 전보다 30% 이상 감소한 반면, 단출한 형태의 '직접장' 비율은 전체의 20%를 넘고 있다. 장례 절차 자체가 축소되는 가운데 생전 계약을 통해 최소한의 절차라도 보장받으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유족 부재에 대비한 장례 간소화와 디지털화가 동시에 진행 중인 셈이다.

다세대 동거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20년 기준 3세대 이상 가구 비율은 5% 수준이다. 장례나 유품 정리에 있어 가족을 전제로 하던 구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서비스는 비용이 발생하고 지역 편차도 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소득 고령자, 고립된 외국인 노인, 장애인 등은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복지학계는 생전 계약 확산을 새로운 복지 과제로 보고 있다. 고령자의 사망 이후 절차까지 포함한 공공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잇따른다.


지자체 중 일부는 제도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즈오카현 누마즈시는 생전 등록제를 도입해 독거노인이 사망 전에 유언, 장례 방식 등을 행정에 사전 등록하면 사망 시 자동으로 집행되도록 하는 구조를 운영 중이다.
다만 신청 기반 제도여서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고령자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