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효자가 아닌, 가족돌봄청년입니다"…돌봄 사각지대 놓인 2030

뉴시스

입력 2025.04.14 06:02

수정 2025.04.14 06:02

신청주의 기반 복지제도…당사자에겐 '심리적 거리감'만 청년기 자립 막는 돌봄…"10년 지속 땐 국가 개입 실패"
[서울=뉴시스] 직장인 장두원(32)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적으면 반드시 이뤘던 나의 꿈, 청춘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세종대 제공) 2025.04.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직장인 장두원(32)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적으면 반드시 이뤘던 나의 꿈, 청춘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세종대 제공) 2025.04.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김지현 인턴기자 = 직장인 장두원(32)씨는 스물네살이던 지난 2017년부터 유방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주돌봄자 역할을 해왔다. 아버지 사업의 부도 이후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어머니의 암 진단을 계기로 간병까지 도맡게 됐다.

장씨는 "항암 부작용으로 어머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을 때, 비닐장갑 두 겹을 끼고 긁어드리면서 많이 울었다"며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엄마랑 그냥 같이 죽어야 되나' 생각도 했다"고 떠올렸다.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은 만성·정신질환이나 장애, 중독 등을 지닌 가족을 돌보는 만 34세 이하의 청년을 뜻한다.

가족돌봄청년은 아픈 가족을 병간호하거나 가정 내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문제는 정작 본인 당사자와 사회는 이들이 '돌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장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9년쯤 '영케어러'가 화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 문건에서는 가족을 간병하는 청년을 단순히 '부모를 돌보는 사람'으로만 다룰 뿐, '돌봄청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으니 어머니를 간병해야 되는 사람 정도로 스스로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달 기준,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 87곳은 가족돌봄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지원 속도는 더디다.

지난 9일 김옥수 국민의힘 의원은 충청남도의회 본회의에서 "충남 가족돌봄 자체 사업이나 담당 부서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자체가 지난해 가족돌봄청년 지원 조례를 제정해 시행했음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충남에서 유일하게 시행 중인 것은 국가사업인 일상돌봄 서비스이지만 대상자는 1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존 복지 자원의 활용조차 어려운 이유는 한국의 복지체계가 '당사자 신청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직접 서류를 떼고 자격을 입증하고, 신청을 완료해야 지원이 시작된다.

그러나 스스로가 가족돌봄청년에 해당된다는 인지가 없다면 발굴조차 되지 않는다. 설사 인지를 하더라도, 가족의 병을 증명하고 돌봄을 설명해야 하는 과정은 많은 청년에게 '완벽한 서류'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요구한다.

장씨는 "부모님이 번듯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갑자기 아픈 경우에 자기를 영케어러라고 정의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돌봄의 사회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가족돌봄청년들은 돌봄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데 부담감을 느낀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서울=뉴시스] 한 돌봄청년 A군의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있다. A군의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사진=초록우산 제공) 2024.09.1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한 돌봄청년 A군의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있다. A군의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사진=초록우산 제공) 2024.09.13. photo@newsis.com

전문가들은 특히 '장기 돌봄'의 구조화에 우려를 표한다. 청년기가 삶의 방향을 설계하는 시기라는 점에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은 "국가가 가족돌봄청년에 개입할 때 첫 번째 원칙은 장시간 돌봄을 하도록 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청소년은 그 시기에 적절히 누려야 하는 취미와 놀이, 건강, 학업 등이 있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이들이 현재 청년이지만 10년 넘게 케어러로 활동한 게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며 "십수년이 지나도록 케어러로 살고 있다면 국가 개입이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장씨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는 가족돌봄을 시작하게 되면서 해외 연수, 법조인의 꿈같은 것들을 포기하게 됐다.

장씨는 "여전히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현재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장씨에게 있어 돌봄은 단지 시간분배의 변화가 아닌 '삶의 주도권'이 뒤바뀌는 일이었다.

허 조사관은 가족돌봄청년들이 가족을 돌보느라 자립할 기회를 상실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준비하는 데 드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보장해야 한다"며 "삶의 의욕을 잃지 않도록 정신건강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이들이 적절한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허 조사관의 설명이다.


허 조사관은 한국에서 영케어러의 연령 기준이 만 34세까지로 넓게 설정된 데 대해 "청년기본법상의 '청년' 정의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 지원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청년의) 연령대를 과도하게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허 조사관은 "대부분 30대 후반에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시기인만큼, 청년 연령대에는 돌봄노동 전반에 대한 복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돌봄청년들이) 장기간 케어러로 머무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reate@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