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련(러시아) 어떻게 다루나’ 냉전시대와 고민 유사
“전략가 브레진스키와 키신저라면 푸틴과 이렇게 협상 안해”
칼럼리스트 에드워드 루스의 ‘주말 에세이’에서 분석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의 주말 에세이 ‘마지막 대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실었다. 다음은 요지.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좌관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냉전시대 전략가인 두 사람은 서로 평행선을 달리듯 견해 차이를 보이며 경쟁하면서 냉전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미국의 숙적 소련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유지할 것인지, 이념적 투쟁을 재개할 것인지를 두고 갈렸다.
키신저는 소련이 영구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는 틀렸다.
소련 대응을 둘러싼 그들의 견해차는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놓고 보이는 분열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오늘날에는 두 사람 같은 지적 창의성, 대중적 명성, 외교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 부재는 이런 대전략가의 부재에도 요인이 있다.
그들은 유대계 독일인(키신저)과 폴란드(브레진스키) 출신 이민자였으나 종종 미국 태생보다 미국의 자유를 더 중시했다.
키신저는 1938년 15살에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이 뮌헨 회담을 하기 한 달 전 미국에 왔다. 5살 아래 브레진스키는 그해 히틀러가 수데텐란트 점령을 완료한 이틀 후 처음 ‘자유의 여신상’을 봤다.
키신저는 대가족이 홀로코스트로 말살됐고, 브레진스키의 조국은 홀로코스트 참화를 겪었다.
질서와 정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키신저는 질서, 브레진스키는 정의를 선택했다.
딘 애치슨 전 국무장관은 키신저와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만든 전후 질서의 창조에 참여하고 그 질서에 대한 실존적 위협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심했다고 평가했다.
키신저는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했을 것이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과거도 아니다”
키신저는 매혹적이고 아첨의 달인이자 기자회견의 거장이었다. 반면 브레진스키는 언론의 적을 만드는 데 더 뛰어났다.
키신저는 전략적으로 모호했으며 ‘움직임 없는 움직임’을 구현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이기도 했던 것으로 강대국 세력균형에 의한 세계 질서의 안정이라는 지침으로 되돌아갔다.
키신저는 브레진스키와 견해가 다른 것에 대해 1970년대 초 “무비판적인 친구보다 우호적인 비평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라고 그의 식견을 높이 평가했다.
서로 의견이 달랐지만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트럼프가 ‘역 키신저’ 전략을 구사한다는 주장, 즉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을 억제한다는 주장은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다.
소련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적인 혐오감은 카터 대통령의 중국 정책의 원동력이었다.
키신저는 미국, 소련,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를 유지하고자 했고 카터 정권 하에서 이들은 사실상의 파트너가 되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과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전략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월츠나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에게 키신저-브레진스키식의 재량권을 줄 가능성도 낮다.
브레진스키와 키신저는 견해가 다른 것이 많았으나 트럼프에게 평화 협상에 앞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땅을 떼어주는) 양보를 하라고 조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콤한 선물은 미리 포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과 바꾸며) 흔들면서 주는 것이 좋다.
두 사람 모두 JD 밴스 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모욕한 사건에 분개했을 것이다.
유혹자인 키신저는 대부분의 파리를 꿀로 잡았다. 날카롭고 때로는 뾰족한 브레진스키는 ‘파리 지옥’(잎을 벌렸다 닫아 가둔 뒤 곤충을 잡는 식물)에 더 가까웠다.
둘 다 젤렌스키를 먹잇감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카메라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푸틴은 트럼프가 푸틴을 이해하는 것보다 트럼프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다.
키신저가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러간 충돌을 부를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키신저의 입장 변화는 합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그의 습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라는 사업체를 운영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백악관 등 정부 부처와의 접촉은 그의 컨설팅 사업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백악관(조 바이든 정부)의 입장에 동의했을 수 있다.
사업을 하지 않은 브레진스키는 모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오늘날 상황 때문에 키신저나 브레진스키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디지털 시대에 지정학적 책략을 실행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키신저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키신저와 브레진스키가 함께 할 때 더욱 흥미로웠고 경쟁하는 전략이 있던 때가 전략이 없는 것보다 나았다.
두 전략가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두 사람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이 자신이 만든 세상을 부정하는 지금 두 인물 모두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브레진스키는 2017년 89세, 키신저는 2023년 100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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