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

[기고] '해방의 날' 선언과 달러 체제의 위기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14 18:22

수정 2025.04.14 18:50

[디지털 방코르: 21세기 글로벌 통화 질서를 묻다-1회]

엑스크립톤 김종승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엑스크립톤 김종승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전 세계 무역 정책에 중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지난 2일 미국에 불공정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부과하는 국가들에 대해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전격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와 산업 공동화 문제를 '국가 경제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보복적 통상 조치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갈등의 급격한 확산을 막기 위해 일부 주요 교역국에 대해 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하고 협상에 착수했다.

이 조치는 단순한 보호무역주의 회귀나 선거용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달러 중심 국제 통화 질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로 읽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일방적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천명해 왔다.

올해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한 지 정확히 81년이 되는 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4년, 미국은 전후 국제 경제 질서 복원과 무역 안정화를 위해 금본위 달러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 체제(이른바 금환본위제)를 설계했다. 이후 수십 년간 세계는 '달러'를 기준으로 한 통화 안정성과 무역 신뢰 체계 속에서 성장해 왔으며,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붕괴했다. 그 이후 글로벌 통화 질서는 금 대신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헤게모니에 기반한 법정통화 달러 체제로 대체됐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체제는 태생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1960년대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경고했듯이, 기축통화국은 세계경제의 유동성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경상수지 적자와 달러 공급을 확대해야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통화의 환율 안정성과 신뢰도를 훼손시키는 이율배반적 구조이다.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를 통해 글로벌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그러나 이 구조는 미국 정치 내부에서 점점 더 큰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제조업이 붕괴된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의 불만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무역 정책 노선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기반이 돼왔다. 이번 '해방의 날' 선언은 미국이 더 이상 기축통화국의 역할을 지금처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의 정치적 표출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는 이제 중대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달러가 더 이상 세계 유동성의 중립적 공급자로 기능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를 구상해야 하는가. 이는 단순히 금리나 환율 정책의 조정 문제를 넘어, 세계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통화 주권의 미래를 좌우할 근본적 구조의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브레튼우즈 체제를 설계했던 그 원점으로 돌아가, 보다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글로벌 통화 시스템을 진지하게 재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다음 회차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사상적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방코르(Bancor)’ 구상과 국제청산동맹(ICU) 제안을 되짚어보며, 이 미완의 유산이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의미로 다시 호명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