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뉴스1) 정은지 특파원 = "한어(표준 중국어)와 짱어(티베트어) 모두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요."
지난달 31일 오전 시짱(티베트) 자치구 린쯔시에 위치한 바이구 중학교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말이다.
중국 정부는 짱족(티베트족) 학생들을 '중국화' 하기 위해 짱족 거주지의 학교를 폐쇄하고 기숙학교를 보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기숙학교를 통해 티베트 고유의 문화나 언어와 같은 정체성을 약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22년말 기준 티베트 내 중국 기숙학교 학생은 100만명에 달하고, 지금은 더욱 더 증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구 중학교에는 1234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데, 대부분인 1124명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날 취재진이 찾았을 때 한 교실에선 '짱어'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짱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짱족 전통의상을 입고 수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학교 관계자는 "현재 학교 내 짱어 수업은 1주일에 총 8회로 한어의 수업 시간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교에서 짱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경우는 짱어 한 과목이다. 짱족들이 '모국어'라고 칭하는 짱어 수업이 한어 수업시간과는 똑같이, 영어(총 7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배정된 것이다.
역사나 일반 교과목의 경우도 대부분 한어로 수업한다. 지난 2020년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거주 지역의 수업을 표준 중국어로 통일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한족인 학생들도 짱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면서도 "학생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학생 자율권이 보장된다는 것이 학교 측 설명이지만 한어 중심의 커리큘럼임은 분명해보였다.
학교 관계자는 "현재 약 100명 규모의 선생님 가운데 60명 정도가 소수민족"이라며 "한족 교사진들은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광둥이나 푸젠성 출신"이라고 전했다.
학교 곳곳에도 짱어보다 한어가 더 눈에 띄었다. 교실 복도의 벽마다 붙어있는 시간표, 학생 기본 정보는 모두 중국어만 표기되어 있었고 민족 단결을 강조하는 표어 등도 짱어와 병기되어 있었으나 글자 크기는 한어가 월등히 컸다. 모든 교실 칠판 위에는 시진핑 주석의 초상화와 5명의 역대 지도자 사진, 오성홍기, 공산당기가 있었다. 교무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부 교사들 책상에는 시진핑 사상과 관련한 서적물도 다수 보였다.
학교 캠퍼스 내에 민족 간 단결을 강조한 '단결 광장' 구조물은 물론이고 학교 소개나 우수 학생의 사진이 붙은 게시판 모두 한어로만 표기됐다.
캠퍼스 내 건물에 쓰여진 표어들도 한어 위주였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에는 '당을 위해 인재를 기르고 국가를 위해 인재를 양성한다'는 문구를 비롯해 '민족 단결의 노래를 부르고 현대화로 나아가자', '조국 통일을 수호하자'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교실 건물을 지나면 학생들의 기숙사가 바로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4~5개의 이층침대와 세면대, 화장실 등이 모두 갖춰진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숙사 건물의 복도에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나 글쓰기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1층 기숙사 복도에는 중학교 3학년 짱족 학생이 한어로 '20대 당대회에선 제국주의·봉건주의·관료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토지 혁명과 민족 해방, 공업 및 문화 교육 발전을 실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적힌 액자도 있었다. 학생들의 중국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음악, 체육 등 다양한 체험은 제공받고 있으며 정수기 설비 등을 신경써서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현대화한 교육을 제공해 학생들의 기본 인권인 학습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취지다.
학교 관계자는 짱족 학생들이 강제로 기숙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짱족 학생은 "윈난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으로 오게 됐다"며 "1주일에 한번 정도 부모님이 이 곳으로 오시면 만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쉬즈타오 시짱 자치구 부주석은 "시짱 지역은 땅이 넓고 인구가 적어 일부 농촌 지역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분산된 학교는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시짱은 국가 의무교육법에 따라 일부 학교에서 기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해당 학교 입학 여부는 전적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쉬즈타오 부주석은 "기숙학교 모델은 중국과 시짱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취하고 있는 모델로 지리적 조건 등의 요인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수년간의 노력으로 이 지역 아이들이 학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장기적인 발전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짱족 등 소수민족이 표준 중국어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은 당국의 '동화' 정책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 학교를 방문하기 며칠 전 라싸에서 만난 한 짱족 청년은 "라싸에도 중국 음식점이 많아졌기 때문에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밥도 못먹을 수 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한어를 배웠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없지만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우리 모국어인 짱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언급했다.
소수민족으로서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도 어렵다고 한다. 결국 이같은 상황 속에서 티베트 고유어의 설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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