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서 중소기업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관세 폭탄으로 인해 회사가 얼마나 어려움에 처했는지 정부와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도움을 받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런 상황이 오히려 회사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라 주가나 재정 관리에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약한 고리'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예고했던 고율의 국가별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기본관세 10%에 15%의 상호관세를 더해 총 25%의 관세가 매겨진다.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제조 중소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예정돼 있던 미국 수출 계약 시점이 밀리는 경우도 속속 발생하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들의 최대 생산기지로 꼽히는 중국과 베트남 등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들은 한국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46%의 관세를 감내해야 하는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중소기업만 1만 곳이 넘고 진출 기업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88%에 달한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기본 20%에 34%의 추가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같은 관세율로 맞불을 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50%를 추가해 총 104%의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했다.
인건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설비를 투자해 해외 생산기지를 마련했지만 대미 수출에 있어서는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 하지만 막상 취재에 착수하자 적극적으로 상황을 전해주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드물었다.
"일단은 재고로 버티고 있고 아직까지 큰 타격은 없습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요. 어떤 기사를 쓰시려는 건가요?" "저희는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한 업체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가격 경쟁력 저하, 수주 물량 감소 등으로 한국 수출이 74조 원 이상 감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상황을 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미국의 관세로 인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 차원의 대미 협상에 나서야 할 시점이지만 기업들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베트남, 중국 등에 생산기지를 차린 중소·중견기업들의 대다수는 대기업들의 협력사로 함께 진출한 곳들이다. 협력사로서 원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장기간의 내수 침체와 고환율 등으로 기초체력이 약해진 중소기업들의 채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금융권도 기업들엔 부담이다. 자칫 관세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 은행권의 압박이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다.
"해외에 진출하는 중소기업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다. 중소기업의 메시지와 정부가 함께 가고 필요한 지원을 놓치지 않겠다."
오영주 중기부 장관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어떻게 안심시킬 것이냐는 질의에 한 답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관세맨'을 자처하며 고율의 관세가 예상됐던 것을 고려하면 중기부의 현황 파악은 늦은 감이 있다.
고관세 기조는 환율 폭등 등 또 다른 문제로 번지고 있다. 미국 수출분을 재고로 버티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존속하려면 현황 파악은 빠르게 끝내고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 트럼프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 속만 끓이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우리 정부만큼은 확신을 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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