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2년 4월 18일, 제임스 H. 둘리틀 중령의 지휘 하에 16대의 B-25 미첼 폭격기가 USS 호넷 항공모함에서 발진해 일본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 날아올랐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은 일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반격 의지를 보여줄 상징적인 작전을 지시했고, 육군 항공대의 둘리틀 중령이 이 임무를 맡게 됐다.
당시 군사기술 수준으로는 항공모함에서 중형 폭격기를 발진시켜 일본 본토를 폭격한다는 발상은 매우 혁신적이고 위험한 계획이었다. B-25 폭격기는 항공모함 운용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이륙 거리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내 16대의 폭격기는 도쿄, 요코하마, 나고야, 고베 등 일본 주요 도시의 군사 및 산업 시설을 폭격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5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가옥 262채가 파괴됐다. 또한 순찰선 5척 침몰하고, 거의 완성된 항공모함 1척도 손상을 입었다.
둘리틀 공습 자체는 일본에 큰 물리적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공습은 일본 본토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고, 일본 국민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줬다. 이 공습으로 인해 일본 군부는 방어선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는 미드웨이 해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폭격에 참여한 B-25 16기는 모두 손실됐고, 둘리틀 공습 대원 80명 중에는 전사 3명과 포로 8명이 발생했다. 이 공습은 진주만 공격 이후 침체됐던 미국의 사기를 진작하고, 일본에는 본토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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