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검찰이 진품이라고 판단하자 천 화백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2심에서도 패소했다. 유족 측은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3부(부장판사 최성수)는 18일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 씨 측에서 내세워 온 검찰 수사의 위법성 주장, 수사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은 위작 주장을 충분히 조사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등에 의뢰했고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해 나름대로 미인도의 위작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했다"고 봤다.
지난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천 화백의 '미인도'를 공개했다. 생전의 천 화백이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반발하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천 화백 작품이 맞다고 맞서면서 위작 시비가 불거졌다.
논란은 천 화백이 2015년 미국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며 재조명됐고 유족 측은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이 천 화백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사자명예훼손,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죄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검찰이 해당 사건을 수사한 뒤 2016년 12월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자 유족 측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검사의 성실·객관 의무 위반 부실 수사 등을 문제 삼아 2019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김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유족이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김 씨 측 대리인인 이호영 법우법인 지음 변호사는 "이 사건의 쟁점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감정인에게 '이거 그냥 진품으로 보면 어때요?'라고 회유하고, 나아가 미인도를 진품으로 단정적으로 공표한 것이 논리칙경험칙에 부합하는 공권력 행사였는지였다"고 밝혔다.
또한 "특히 감정인에게 질문한 부분에 대해 1심에서는 그런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으나, 이번 판결에서는 해당 발언이 있었음을 인정했다"면서도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이며 감정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보도자료에서) 수사기관이 (미인도가) 진품으로 판단된다는 견해 표명을 한 것이지, 허위사실 유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검찰 수사가 경험칙 논리칙에 위반되는지 아닌지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애석하고 참담한 심경이다. 진실이 늘 승리하지는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미인도는 거의 100% 위작이라고 판명한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팀의 과학적 검증 결과도 검찰은 무시해 버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위작 감정은 전원일치 의견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판정 불가' 결론이 내려지는 게 원칙인데, 위작 3표, 진작 4표, 기권 2표 결과가 나왔는데도 '대다수 진품 의견'이 나왔다고 검찰이 발표했고 투표 결과를 법원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밝히기를 거부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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