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토론회 수어통역 1명뿐, 공약은 문자로만…청각장애 유권자 '뒷전'

뉴스1

입력 2025.04.19 07:01

수정 2025.04.19 07:01

장애인 인권 단체 회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투표소 선정과 수어통역·자막 제공 의무화, 이해하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등을 22대 총선에서 제공할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2024.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장애인 인권 단체 회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투표소 선정과 수어통역·자막 제공 의무화, 이해하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등을 22대 총선에서 제공할 것을 국회에 촉구했다. 2024.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편집자주]두 번째 대통령 탄핵, 50일도 남지 않은 21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이 어느 때보다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요즘, 소리가 아닌 손으로 세상을 전하고 접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들의 '손으로 만난 세계'를 뉴스1이 조명한다.

(서울=뉴스1) 유수연 김종훈 남해인 이기범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오는 6월 3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고민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질까.

청각장애 선거인들은 각 대선 후보의 공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수어 통역사 1명은 후보자 토론회의 공방을 전달하기 충분치 않다. 수어가 모국어인 농아인에게 한국어로 쓰인 선거 공보물은 이해하기 힘들다. 전문가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책임 있는 정보 전달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서는 청각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4개가 계류된 상태다. 개정안에는 임의 규정으로 돼 있는 공직선거법상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선거 공보 제공을 의무 규정으로 바꾸는 내용 등이 담겼다.

후보별 수어 통역 제공은 유료 채널에서만?…인권위 권고 유명무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지상파 방송 후보 토론회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도록 규정하는 등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 장애인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 벽 허물기)은 후보 또는 정당인이 토론자로 2인 이상 출연할 때 수어 통역사 2인 이상을 한 화면에 배치할 것을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후보자 토론방송에서 수어 통역사가 1명밖에 없어 누구에 대한 통역인지 알 수 없고, 화면이 작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KBS, MBC, SBS 지상파 방송 3사에 선거방송을 송출할 때 수어 통역사 2인 이상을 배치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에 방송사들은 장애인들의 볼 권리와 참정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인권위 권고에 따라 지난 202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제20대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는 수어 통역사 2인이 배치되기는 했다. 하지만 수어 통역사 2인이 화면에 동시에 배치되는 순간은 없었다. 수어 통역사 2인은 서로 교대하며 토론회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담당해 통역하는 데 그쳤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에는 수어 통역사가 2명씩 배치되고 복지 TV에는 후보자별 맞춤형 수어 통역이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복지 TV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유료' 채널이다.

한편 영국 공영방송 채널 'BBC Two'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See Hear'는 선거 특집을 편성하고 후보들을 초청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선거 후보와 비슷한 크기로 등장하며 화면의 반을 차지한다. 청각장애인 유권자는 방청객으로 참석해 수어로 후보에게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약에 관해 묻기도 한다.

공직선거법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공보물만 규정…"책임 있게 정보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현행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선거 공보물만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7년 한국수어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자언어(필담)를 이해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이 전체의 26.9%를 차지하지만, 후보가 직접 제작하지 않는 이상 모든 청각장애인이 문자 공보물을 봐야 하는 실정이다.

김홍남 수어 통역사(52)는 지난 17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선거인이 QR코드를 찍으면 음성으로 공보물을 읽어주듯이 수어로 '이 후보가 이런 공약을 갖고 있구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에는 시각장애 이외에 청각장애 등 장애가 있는 선거인을 위해 수어 선거 공보 등 작성의 비용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주 의원은 "시각장애 이외의 장애를 가진 선거인의 선거 정보 습득을 위한 제도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해 선거권이 평등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며 "청각장애인의 경우 시각에 문제는 없으나 문맹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선거 공보 해석의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거에 있어서 장애인 접근성과 관련된 지침이 미비하다는 데 공감한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청각장애인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책임 있게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