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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허풍성·선심성 공약 난무하는 선거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20 18:12

수정 2025.04.20 18:12

AI투자에 100조, 200조 숫자경쟁
구체적 전략없이 큰소리 쳐선 안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에서 백준호 대표 등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에서 백준호 대표 등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인공지능(AI) 분야에 100조원, 2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는 1호 공약으로 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의 AI 투자를 약속하며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같은 당 김경수 후보도 향후 5년간 민관이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경선 후보는 이보다 많은 200조원을 투자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했다.

AI 공약을 꼬투리 잡아 설전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형 챗GPT를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공약한 이 후보를 향해 양향자 국민의힘 경선 후보는 "이 대표의 AI 공약은 빈 깡통"이라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100조, 200조 숫자 경쟁하는 후보들을 "멍청하고 한심하다"면서 싸잡아 비판했다.

AI 후발주자로 투자 규모를 늘려야 함은 맞지만 구체적 전략도 없이 얼마를 쏟아붓겠다며 큰소리만 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숫자 싸움만 한다고 AI 경쟁력을 당장에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AI 약소국 취급을 받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AI 투자에서 한국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도 고작 1개였다. AI 인재가 부족한 데다 있는 인재들마저 미국·중국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AI 육성은 민관 일체로 추진해야 하는 국가프로젝트다.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하드웨어를 확충하려면 대규모 투자 없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재정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과거 반도체를 국가 미래산업으로 육성한 것과 같이 좋은 입지를 확보하고 인력과 전력·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인재를 육성하고 선제적 투자를 촉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AI 산업 육성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와 같은 획일적 규제를 완화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이런 것들을 협치해 딱딱 처리하고 재정을 적기적소에 쓰는 것이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다. 우리는 반도체·방산·조선 등의 경쟁력이 높은 제조 인프라를 활용해 투입 대비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토양에서 민간기업은 AI 투자를 확대하려 할 것이다.

어떤 지도자든 미래 산업에 많은 자금을 투입해 성공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증세 없이, 적자 국채를 찍지 않고는 재원을 조달할 수 없는 게 우리 처지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나랏빚이 900조원에 육박한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감세, 감세" 하며 선심성 공약을 앞다퉈 내걸고 있는데, AI에 거대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것과 앞뒤가 안 맞는다.
아니면 말고 식의 허풍과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주권자인 국민들이 냉정하게 가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