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유동화증권 개정안에서 기업구매카드 채권을 5% 의무보유 룰에서 제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채권시장의 한 전문가는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의 관리 소홀과 카드사·증권사의 도덕적 해이가 빚어낸 공동 책임"이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당국은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도 비우량 기업이 개정안의 허점을 파고들 여지를 남겨두었다. 2024년 1월 자산유동화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당국은 2023년 기업구매카드 유동화증권을 5% 의무보유 조항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기서 '의무보유'란 유동화증권의 기초자산을 제공한 자산보유자가 해당 증권의 최소 5% 이상을 직접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조항이 삭제되자 카드사들은 기업구매카드 기반 유동화증권의 발행한도를 대폭 늘렸다. 이는 마치 신용불량자에게 '한도 없는 카드'를 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용위험에 대한 내부통제나 리스크 관리 없이 무분별하게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온 셈이다.
카드사와 증권사들은 이들 유동화증권을 개인투자자에게 대거 판매하고,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도덕적 해이'가 극대화되는 대목이다. 자산보유자가 5% 이상 유동화증권을 보유하도록 하는 규정을 없앤다는 것은, 기업이 자신들의 부실 리스크를 전혀 지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비우량 유동화증권의 무분별한 발행 확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1월 회사채의 기한이익상실(EOD) 직전까지 총 7000억원에 달하는 유동화증권을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발행했다. 만약 EOD가 트리거가 되어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에게 전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는 대표주관을 맡아 이들 유동화증권을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홈플러스 기업구매카드 기반 유동화증권 발행 규모만 해도 4019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정작 이 카드로 무엇을 구매했고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기업구매카드 유동화증권의 치명적 허점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주 중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경영진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를 패스트트랙으로 검찰에 이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구조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것도, 이제 와서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것도 모두 금융당국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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