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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수사권은 ‘칼’… 문제는 누가 아니라 어떻게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4.21 18:08

수정 2025.04.21 18:08

정지우 사회부장
정지우 사회부장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경선 후보들이 다시 '수사권 조정'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겠다는 후보도 있고, 경찰의 힘을 견제하겠다는 쪽도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기능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아예 폐지할 것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수사권 구조'를 손보겠다는 데엔 공감하고 있다.

2020년 단행된 1차 수사권 조정은 형식적으로는 개혁이었다.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내려놨고, 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을 얻었다. 표면상으론 '견제와 균형'을 위한 조정으로 홍보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일방적이었고, 결과는 예상보다 고통이 컸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현장에선 수사 초기 단계부터 혼선이 이어졌다. 뒤늦은 보완 입법과 제도 조정이 있었지만 이미 벌어진 혼란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진행된 내란 혐의 수사 초창기에도 이러한 구조적 불안은 그대로 반복됐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각 자신들에게 수사권이 있다고 주장하자 오히려 피의자 측이 수사기관을 골라 대응하는 이른바 '기관 쇼핑'에 나섰다. 일부 피의자가 이들 기관에 수사 주체를 논의한 뒤 연락을 하라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물론 수사권 조정이 잘못된 개혁은 아니다.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는 구조는 권력의 남용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를 분리해 견제하는 시스템은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이다. 실제 다수의 법조계와 시민사회도 수사권 조정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 방향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를 조율하는 속도와 방식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독일은 수십년에 걸쳐 수사기관 간 권한을 점진적으로 조정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하나씩 마련해갔다.

영국은 수사와 기소를 원칙적으로 분리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유지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조정이 필요한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 왔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는 수사권 조정을 마치 '밥그릇 싸움'처럼 진행해왔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는 서로의 권한을 두고 끝없는 신경전을 벌였고, 정치권은 이를 정쟁의 소재로 활용하며 갈등을 키웠다. 수사권은 권한이자 책임인데, 우리는 그 '권한'에만 집착했고, 그 책임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더 큰 우려는 이번 2차 수사권 조정 공약 역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흔들릴 수 있다는 부분이다. 검찰청 폐지, 공수처 폐지, 국가수사국 신설, 공소청 분리 등 여야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은 방향부터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 어떤 안에도 수사권이 어디에 있어야 국민에게 가장 신속하고 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 고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 논리가 앞서는 개편 논의가 실제 제도화로 이어질 경우 그 여파는 일선 수사 현장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 수사 구조가 복잡해지고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질수록 사건은 초기에 길을 잃게 된다. 이럴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서민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수사에서 이미 혼선이 확인된 만큼,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그 혼란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수사권 조정은 검찰·경찰 개혁, 공수처 개편이라는 명분을 넘어 국민을 위한 사법 개혁으로 전환돼야 한다. 구조적 혼란의 1차 피해자가 되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방향과 속도, 방식을 잡아갈 필요가 있다. 권한의 주체를 바꾸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중심에 두고 논의해야 한다.
수사권은 칼이다. 그 칼을 누가 쥐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게 현실이지만, 사실 어디에 어떻게 휘두르느냐가 더 중요하다.
권한을 따지기 전에 그 칼이 향해야 할 방향을 먼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jjw@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