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발효 등 돌발상황 억제 '최우선'
이번 주 실무협의 돌입…"본게임 이제부터"
이번 주 실무협의 돌입…"본게임 이제부터"

[파이낸셜뉴스]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이 지난주 첫발을 디뎠다. 미국발 관세 전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등 4개 분야를 핵심 의제로 정하고 논의를 이어가기로 양국은 합의했다. 경제와 통상 전문가들은 조기 대선 국면 속 협상력이 약한 정부는 앞으로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 등 돌발적인 상황을 피하는 방어적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안보, 환율 변수되나
28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관세 협의에서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 정책 등 4개 분야가 핵심 의제로 정리됐다. 4개 분야에 대한 구체적 협의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민감한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비관세 조치에는 미국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던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쌀 저율 관세 할당 제한, 수입차 배출가스 관련 규제 등이 꼽힌다.
투자 협력과 관련해서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투자를 압박 카드로 내밀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개별 기업의 투자"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사업성을 믿고 들어갔는데 수익이 맞지 않을 경우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하나하나 따질 것이 많다"고 밝혔다.
경제안보 의제가 향후 협상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기술 패권 경쟁은 최근 더 격화되고 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을 둘러싸고 상호 보복성 수출 통제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관세 협상 과정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핵심 산업과 공급망 협력, 대중국 견제 성격을 띠는 수출통제 전략 등이 논의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2차전지 등의 메이저 플레이어라는 걸 미국이 인정하기 때문에 4개 의제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이를 협상 과정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관련 보조금 정책의 일관된 집행을 강조하는 지렛대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수출통제는 앞으로 우리나라에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수출통제를 놓고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이 한국의 동참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의제에 포함된 환율 정책도 변수다. 특히 환율은 미국이 의제 포함을 요청했고, 우리나라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별도 논의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등이 환율 조작을 통해 대미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번에 관세 조치를 통해 미국이 노리는 것이 1980년대 '플라자 합의'와 같은 통화 평가 절상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환율 절상이 현실화되면 수출 등은 타격을 입고, 경제 전반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미리 비관적 전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원화 약세는 한국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했다기보다는 달러화 문제가 더 크기 때문에 미국 측에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시장 개입도 두드러지지 않아 압박 카드 정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협상팀에 적절한 힘 실려야
통상·경제 전문가들은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진행 중인 권력 공백기여서 협상팀에 전권을 주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런 상황임에도 손 놓고 있으면 경제는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급한 불은 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수 교수는 "4개 의제 중 관세 조치, 투자 협력 등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나가야 한다"며, "승용차, 철강, 알루미늄 등에 부과된 25% 관세 철폐 또는 완화는 협상을 통해 우선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 협력도 현 정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라고 덧붙였다.
주원 실장은 "미국은 알래스카 투자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만큼, 최종 투자 협약까지는 아니더라도 민관 합동 투자사절단을 꾸려 투자 수요 조사를 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주 한미 고위급 협의는 전초전에 불과하고, 미국이 내밀 구체적 '청구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본 게임은 이번 주로 예정된 실무 협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협의 분야와 방식을 좁힌 뒤 실무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5월 15∼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방한할 예정이며, 이때 한미 협상의 구체적 방향이 보다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對)한국 수출 장애 요인으로 지적한 각종 비관세 요인을 꺼내 들며 한국의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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