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1996년까지) 그림을 팔지 않은 화가', '죽거든 관 속에 스케치북과 4B연필을 넣어달라고 부탁한 예술가'.
"그림이 주인을 떠나면 외로워서 안된다"며 그림을 팔지 않은 채 무명 화가의 길을 걸어간 탓에 '바보화가'로 불린 화가 한인현(韓仁炫)씨가 28일 오후 1시18분께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4세.
함남 함주군 흥상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릴 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화집을 보고 반해서 '고흐 못지않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남북한 통틀어 첫 예술학교인 흥남문화학원(고교 과정)과 해주예술전문학교(대학 과정)에서 스파르타식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 덕에 "크로키와 데생에 관한 한 국내 최고"라는 평을 받았고, 스스로도 "데생의 기초가 안된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고 단언하곤 했다.
단신 월남 후 50세가 넘어서야 첫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고인을 아는 이들은 "그의 선과 색에는 허위와 가식이 없으며 훼손된 자연성을 상징한다"(미술평론가 류석우)나 "그의 작품은 심장을 아프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우즈베키스탄 미술대학 쿠지예프 총장)고 순수한 인간미와 빼어난 예술성을 극찬했다.
아나운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계진 전 아나운서클럽 회장이 1996년 '이계진이 쓴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디자인하우스)를 펴내면서 고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자비를 들여 두 번이나 고인을 유럽에 데려갔을 정도로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책이 나오고 고인이 유명해진 뒤 일부 그림이 팔리거나 유출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젊은 날 김환기, 박노수, 김기창 화백이 그랬듯이 한 화백도 책 표지와 삽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다"며 "삽화를 그린 뒤에 돈을 받으러 가면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다더라"고 말했다. 또 "(내 책이 나오고) 유명해진 뒤 그림이 몇점 팔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며 그림을 가져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 화백은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벌기보다는 '미술관을 만들어준다고 하면 모두 기증하겠다'며 그림을 모아놓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말년에 고인이 '그림을 팔아서 내 딸 원피스 한 벌 사주지 못 한 게 한'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도 전했다.
고인은 2003년 저서 '화가 한인현의 행복한 그림일기-꿈'을 펴냈다. 책 말미에 "내가 죽거든 스케치북과 4B연필을 관 속에 많이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유족은 부인 상주환씨와 2녀(한지온·한소영), 사위 오승훈·이종대씨 등이 있다. 딸 한지온씨는 "아버지가 책에 쓴 대로 관 속에 스케치북과 4B연필을 많이 넣어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하고, 발인 후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모실 계획이다. ☎ 031-78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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