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특별 기고]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2 06:00

수정 2025.05.02 06:00

이재성 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특별 기고] 대형 산불 진화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

경북 일대를 휩쓸고 간 화마가 수그러든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으로 근무한 지 6개월 만에 대형산불을 경험했다. 그 큰 불에 물러서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짙은 연기와 뜨거운 화염에 불타던 집들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게 사실이다. 아직도 대피소에 계신 주민들의 소식을 들으면 산불진화대원으로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엊그제 영주국유림관리소 진화대원들이 투입됐던 장소를 찾아가 봤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원들이 투입됐던 마을들은 작은 피해만 있었을 뿐 주택 피해는 전혀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건네주시는 격려의 말에 보람도 느꼈다.

대형 산불을 처음 경험해 본 초보 산불진화대원이지만, 긴박했던 이번 진화 현장을 겪으며 효율적인 산불진화를 위해 몇 가지 고민을 해봤다.

무엇보다 산불진화차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진화차량은 화세가 강할 때 강력하게 물을 분사해 진화하고, 임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높은 수압으로 물을 보낼 수 있다. 자체 분무시스템도 있어 차량 안에 탑승한 진화대원의 안전도 확보된다. 산불도 전쟁이다. 전장인 산불 현장에서 산불진화차량은 탱크나 다름없다. 산불진화대원은 탱크 뒤에 진격하는 군인이다.

하지만 산불진화차량도 임도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소방도로나 진입로가 없으면 소방차가 불을 끌 수 없듯 길이 있어야 산불을 진화할 수 있다. 임도는 밤낮으로 산불진화대원이 쉽게 화선에 다다를 수 있게 한다. 특히나 밤에 급경사진 산비탈을 오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고 위험한 만큼 임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임도가 산불에 무용지물이며 오히려 산불을 확산시키는 통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캄캄한 한 밤중에 길이 없는 급한 산비탈을 올라 이리 저리 옮겨붙는 산불을 꺼봤다면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임도가 개설되고 장비를 갖췄다해도 이를 운용할 진화대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또한 무용지물일 것이다. 특수진화대는 기계화진화시스템 편제에 따라 12명의 대원이 한 팀을 이룬다. 현장에서는 보통 부상이나 건강 악화, 근로기준법 규정 등의 이유로 한 두 명씩 진화작업에서 제외되며 밤을 새운 대원들은 교대를 한다. 경북 의성 산불에 투입된 영주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는 24시간을 기준으로 4~5명의 대원이 일주일간 교대하며 강행군했다.

수 차례 산을 오르내리며 장비를 운반하다 체력의 한계에 도달하거나, 사투를 벌이고도 눈 앞의 불길을 잡지 못하고 철수할 때 느끼는 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야간 진화를 위해 임도가 없는 급경사지를 오를 때 돌이 쏟아져 내려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힘겹게 오른 산 속에서는 옷 속을 파고드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산을 내려왔다 다시 오르기 힘에 부쳐 그 자리에서 차가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가재난 사태에서 온 몸을 던져 불길을 막는 것은 특수진화대원으로서 당연한 임무다. 임무 수행을 위해 대원들 모두 체력 유지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산불진화대원의 증원과 함께 더욱 강력한 진화대원으로 만들어 줄 수준 높은 교육훈련시스템이 절실하다.

최근 대형 산불이후 진화 과정의 보완점을 찾고 개선하기 위해 산림청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노력이 큰 산불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 마련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만반의 대비를 한다면 아무리 큰 산불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