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이 안 보이면 역사책을 펴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전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트럼프 정책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 'MAGA' '보편관세'는 모두 베낀 것이다. 'America First'는 미국이 약자였던 1914년에 등장한 구호이고 'MAGA'는 레이건이, '보편관세'는 닉슨이 환율절상을 위한 도구로 썼던 정책이다.
이 모든 정책들은 미국이 불리해지거나 약해졌을 때 항상 썼던 방식이다.
지금 미국발 세계 무역전쟁의 요체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구조적 불균형 문제다. 1990년대 이후 세계 무역질서는 중국, 독일과 같은 과잉 저축국과 미국 같은 과잉 소비국 간의 불균형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저축국들은 과잉 생산한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고, 소비국은 부채를 통해 이를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이러한 불균형의 축적으로 주기적인 금융위기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하는 미국의 무역수지 문제, 고용 문제는 후진국이 미국을 등쳐 먹은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인 저축률 부족이 부른 투자부족과 제조업 몰락 때문이다. 저축 대신 소비에 돈 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 금융 레버리지를 통해 빚 내서 쓴 결과다.
싸움의 법칙은 '한 놈만 패라'는 것인데 트럼프가 전 세계와 전쟁하는 이유는 미국의 무역적자의 구조변화 때문이다. 지금 미국 무역적자의 29%만 중국이고, 71%가 중국 이외 지역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와 달리 2기에는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과잉 저축국 vs 과잉 소비국의 구조적 불균형" 문제는 국가 간 협력을 통해 글로벌 수요·공급 재조정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 중국, 독일 같은 주요 수출국은 국내 소비를 늘려야 하고 미국 같은 소비국은 저축률을 높이고 생산성을 향상해야 해결될 문제다.
미중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법보다는 주먹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은 수입품 재고가 바닥나면 협상할 수밖에 없고, 중국은 수출기업의 대량실업이 나오면 협상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 미중이 무역으로 상대편을 죽이기는 불가능하다. 무역의 상호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적 100명을 죽이려면 아군도 70~80은 죽어야 하는 전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중의 협상은 결국 미국은 지금보다 덜 쓰고 저축하고, 중국은 더 소비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벌어간 무역흑자를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일정 부분 미국이 회수하게 하여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공통이다. 한국은 당장 발등의 불인 상호관세에 대응도 해야 하지만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미국의 생산 확대와 중국의 소비 확대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어려울 때 손 내미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고 우방이다. 중국산 부품소재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생산 확대에 한국의 기여와 기회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 안미경중(安美經中) 끝났고 탈(脫)중국이 답이라는 대중국 공식도 이젠 맞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전쟁으로 내수확대에 올인하고 있고, 경제성장률 5% 달성에 목숨 걸고 있다.
미중의 3차전쟁으로 중국의 소비 확대, 내수중심 성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추세이고 자본시장 추가 개방도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는 하락했지만 중국 상하이지수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 탈중국이 아니라 다시 소비재와 금융산업에서 진(進)중국 전략을 짤 시간이 왔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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