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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고급 차 '그라나다'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1 18:12

수정 2025.05.01 18:12

[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고급 차 '그라나다'
왕년의 MBC 앵커 고 이득렬이 어느 글에서 "포니 승용차를 호텔에 몰고 갔더니 도어맨들이 '포돌이'라고 부르더라"라고 썼다. 유난히 자동차의 가격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풍조를 지적한 말이다. 일본에 가면 작은 '박스카'를 흔히 볼 수 있고, 유럽 사람들도 소형차를 선호한다. 우리가 고급 대형차를 좋아하는 것은 위신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부의 축적은 고급 승용차 수요를 증가시킨다.

굴러다니는 자동차 자체가 많지 않았던 1970년대까지 고위 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은 직수입한 외제 승용차를 관용차로 쓰기도 했는데, 여론의 비난을 받기 일쑤였고 그들을 위한 국산 고급 세단의 필요성도 커졌다. 지금은 중형차급으로 위상이 떨어졌지만, 국내 고급 세단의 최장수 모델은 현대차의 '그랜저'다. 1986년 처음 발매된 그랜저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랑을 받으며 건재하다. 그랜저 이전의 고급 세단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포니' '브리사' '제미니' 같은 소형 승용차들이 대종을 이루던 1970년대에도 고급 승용차는 있었다.

포드 20M은 현대차가 포드와 제휴해 처음으로 생산한 대형 고급 세단이었다. 유럽 포드가 만들던 타우누스 20M을 현대차가 라이선스로 생산한 것이다. 6기통 V6 엔진을 얹었지만, 배기량은 2000㏄에 불과했다. 고급 세단 '크라운'을 판매했던 신진자동차를 승계한 새한자동차는 1978년 '레코드 로얄'을 생산했고, 이 차종은 새한을 이어받은 대우자동차의 고급 세단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레코드 로얄은 포드 20M보다 크기나 배기량이 작았다. 1970년대 말에 석유파동이 닥치자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더해 크기가 작다는 점이 부각되어 관가에서 많이 사용했다.

기아도 1979년 고급 승용차 판매 대열에 합류했다. 바로 푸조 604였다. '뿌조 604'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푸조의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했다. 프랑스 차를 들여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시장에서 외면받고 말았다. 성능 좋은 6기통 명차(名車)임을 강조했지만, 문제는 2300만원에 이른 국내 최고의 가격이었다. 당시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분양가가 2000만원 안팎이었다. 요즘 돈으로 차 한대가 몇억원이라면 아무리 부자라도 선뜻 살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현대에서 포드 20M 후속으로 출시한 플래그십 승용차 '그라나다'는 그보다는 낮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반응이 좋았다. 6기통 엔진에 유럽식 후륜 구동, 가스식 쇼크업소버, 파워스티어링, 전동식 사이드 미러, 중앙집중식 도어 잠금장치 등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과 편의사양이 적용된 세단이었다(동아일보 1978년 12월 28일자·사진). 정부가 책정한 그라나다의 가격은 1154만원이었다. 세금이 약 700만원이었다. 실제 차 값은 400만원 정도였으나 높은 관세로 가격이 치솟아 폭리를 취한다는 비난은 자동차 회사가 감수해야 했다.

그라나다도 매년 가격을 올려 단종 직전에는 2000만원에 육박했다.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서 그라나다를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를 다룬 드라마에도 고급 승용차 모델로 단골로 등장했다. 그랜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약 8년간 4700여대가 판매됐다. 당시 고가 승용차로서는 제법 많은 숫자다.

그라나다는 최고 부유층만이 탈 수 있는 승용차이기도 했다. 현재의 '에쿠스'나 'G90'보다 더 위상이 높았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그라나다를 직접 몰고 다녔다. 1985년 기사를 보면 그라나다 한대를 굴리려면 한달에 유지비가 86만원이 든다고 돼 있다. 운전기사 보수와 기름값, 자동차세 등을 더한 값이다.
150평짜리 단독주택 관리비가 58만원이라고 했으니 매우 큰 비용이다. 웬만한 직장인의 두달치 월급과 맞먹었다.
과소비 문화를 비판하거나 세무당국이 부자들을 조사할 때면 으레 그라나다가 죄를 뒤집어쓰고 부패의 상징물처럼 지목됐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