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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근의 맛과 멋] 지구촌에서 각광받는 K-농업기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1 18:12

수정 2025.05.01 18:12

K-라이스벨트 사업 같은
농업기술의 지원을 통해
65개국 기아해소에 앞장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일주일에 한두 차례 방과 후 복도에 줄지어 서 있으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주먹보다 큰 고소한 옥수수빵 한 개와 양동이에서 우유 한 컵을 떠주셨다. 옥수수빵은 집으로 가져가서 동생들과 조금씩 나눠 먹기도 하였다. 모두 원조받은 옥수수와 분유로 만든 것으로, 1960년대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늘 배고픔에 시달렸던 우리나라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힘겨워졌고, 특히 1956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원조법(PL480)에 따른 식량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도 1964년부터 한국에 대한 식량원조를 실시했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대한 해외원조는 다양한 분야에서 총 44억달러에 이르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서독 방문 시 서독 대통령과 총리에게 한국의 산업화에 쓸 차관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결과 1969년 홀스타인 젖소 200마리가 서독의 원조로 도입된 것이 오늘날 낙농업의 실질적인 시초가 되었다.

이랬던 우리가 혜안을 가진 지도자와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이제는 경제강국이 되어 타국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 개도국들이 한국의 농업기술 지원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이 세계 농업사에 유례가 없는 혁신적인 통일벼 육종에 힘입어 1977년에 국가적 숙원이었던 주곡 자급을 달성하고,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성취한 것을 부러워한다. 또한 젖소 마리당 우유생산량이 연간 10t을 넘어 세계 5위권이라는 점에도 놀라워한다.

한국은 2018년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하면서 수원국(受援國)에서 원조국으로 성장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필자가 대통령 특사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지도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한국을 배우기 위해 농업분야를 포함하여 다양한 협력관계를 어떻게든 심화시키고 싶다고 하였다. 압축성장의 결과 한국은 개도국이 원하는 다양한 수준의 기술과 전문가를 모두 갖고 있고 농업부터 첨단산업, 문화까지 많은 분야에서 앞서가는 한국이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였기에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크게 늘렸는데 농업분야도 식량원조를 포함하면 2022년 1018억원에서 2025년 2723억원에 달한다.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지역의 무려 65개국이 한국으로부터 농업기술을 지원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는 주식인 쌀이 부족하여 경제적 어려움에도 2021년 기준 1700만t의 쌀 수입에 75억달러의 귀중한 외화를 쓰고 있다.

필자는 2022년 아프리카 방문 후 기아 해소를 위해서는 단순 식량원조가 아닌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K-라이스벨트 사업'을 제안하고 사업화하였다. 통일벼 기반으로 농진청에서 이미 개발한 아프리카용 품종을 해당국별로 100㏊ 규모의 채종포를 만들어 한국의 농자재, 기술, 전문가를 투입하여 한국식으로 종자를 생산한 후 해당국 농가에 보급하는 방식이다. 생산성이 3∼4배 높아져 단기간에 증산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었고, WFP의 신디 매케인 사무총장도 탁월한 방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23년 가나를 시작으로 올해 세네갈, 기니, 카메룬 등 사하라 사막 이남 7개국에서 약 5000t의 종자 생산을 목표로 본격 추진 중이며, 추가로 시에라리온 등 7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1단계로 2027년에 벼 종자 1만t이 생산되면 연간 200만t 이상의 쌀 생산이 가능하여 3000만명 이상을 기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앞으로 K-라이스벨트 사업과 같은 농업기술 지원을 통해 한국이 인류의 기아 해소에 기여함과 동시에 아프리카 등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신뢰관계도 공고히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