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우리가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결국 관세·비관세조치 분야에서 우리가 미국 정부의 양보를 얻는 것이 핵심목표이므로 다른 분야에서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통화(환율)정책 분야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미국은 교역상대국의 인위적 통화가치 절하를 문제 삼지만 우리는 현재 지나친 원화평가 절하를 우려하고 있다. 오히려 원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한 통화당국의 시장개입이 관찰되는 만큼 이 분야는 한미 양국 간 큰 충돌 없이 서로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경제안보, 투자협력 분야에서 한미 간 어떤 논의를 하느냐가 전체 협상의 이익 균형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경제안보와 투자협력 분야는 결국 산업협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이 적극적 협력을 요청한 바 있는 조선 분야는 당연히 산업협력 대상에 포함될 것이며 우리로서는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협력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쟁력이 부족하면서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반도체, 배터리, 원자력 등)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거나, 중국의 추격이 매서운 산업에서 한국과의 산업협력이 미국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부각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산업협력에는 단순히 미국 내 투자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인력양성, 시장개척 등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여러 차원의 협력 어젠다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협력대상인 산업에 대해 미국의 자국 중심 보호주의에 대한 두꺼운 방어막을 형성할 수가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강한 분야도 산업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공기술(AI), 양자기술 등 아직은 미국의 시장지배력이 높은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산업협력 어젠다를 우리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시하는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중요하다. 단순히 미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 개발에서 협력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의 경우 사업리스크의 적절한 헤지방안이 마련된다면 참여를 전향적으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다자협력 틀을 통해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안도 배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산업협력 분야가 다양화되고 협력의 차원이 다층화될수록 한미 간에는 보호주의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한국의 역할을 교역상대국을 넘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공고히 하는 산업협력에 양국이 동의한다면 통상협상도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미 간 산업협력의 분야와 어젠다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제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한미 통상협상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산업협력 패키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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