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서초포럼] 한미 통상 협상, 산업협력으로 풀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1 18:12

수정 2025.05.01 18:12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1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1
얼마 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과 미국 경제·통상 수장 간 '2+2 통상 협의'가 열렸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궐위로 양국 정상회담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통상협상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협상 분야와 관련해서는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의 4개 분야가 논의 대상으로 발표되었다. 짐작건대 개별 분야별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협상 방식보다는 전체 이익의 균형, 즉 분야별로 주고받아 총량에서 균형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관세·비관세조치 부문에서 90일 유예조치 기한 전에 대부분의 품목에서 관세 면제를 얻어내고 비관세장벽과 관련해서는 국내 이해관계 조정의 문제도 있는 만큼 장기적 주제로 논의한다는 정도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최선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우리가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결국 관세·비관세조치 분야에서 우리가 미국 정부의 양보를 얻는 것이 핵심목표이므로 다른 분야에서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통화(환율)정책 분야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미국은 교역상대국의 인위적 통화가치 절하를 문제 삼지만 우리는 현재 지나친 원화평가 절하를 우려하고 있다. 오히려 원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한 통화당국의 시장개입이 관찰되는 만큼 이 분야는 한미 양국 간 큰 충돌 없이 서로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경제안보, 투자협력 분야에서 한미 간 어떤 논의를 하느냐가 전체 협상의 이익 균형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경제안보와 투자협력 분야는 결국 산업협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이 적극적 협력을 요청한 바 있는 조선 분야는 당연히 산업협력 대상에 포함될 것이며 우리로서는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협력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쟁력이 부족하면서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반도체, 배터리, 원자력 등)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거나, 중국의 추격이 매서운 산업에서 한국과의 산업협력이 미국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부각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가 제시하는 산업협력에는 단순히 미국 내 투자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인력양성, 시장개척 등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여러 차원의 협력 어젠다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협력대상인 산업에 대해 미국의 자국 중심 보호주의에 대한 두꺼운 방어막을 형성할 수가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강한 분야도 산업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공기술(AI), 양자기술 등 아직은 미국의 시장지배력이 높은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산업협력 어젠다를 우리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시하는 에너지 분야의 협력도 중요하다. 단순히 미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에너지 개발에서 협력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의 경우 사업리스크의 적절한 헤지방안이 마련된다면 참여를 전향적으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다자협력 틀을 통해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안도 배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산업협력 분야가 다양화되고 협력의 차원이 다층화될수록 한미 간에는 보호주의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한국의 역할을 교역상대국을 넘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공고히 하는 산업협력에 양국이 동의한다면 통상협상도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미 간 산업협력의 분야와 어젠다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제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 한미 통상협상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산업협력 패키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