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고민희 교수 "경제·외교, 성평등과 연관…차기 정부, 여성 대표성 높여야"

뉴스1

입력 2025.05.02 06:01

수정 2025.05.02 06:01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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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평등을 의식적으로 증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평등을 의식적으로 증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지사나 시장 경험을 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처럼 돼 있지만, 한국에서 지금까지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지사나 시장 경험을 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처럼 돼 있지만, 한국에서 지금까지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합을 위해서는 주변부에 있는 소수자와 여성들을 어떻게 대표하고 어떻게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합을 위해서는 주변부에 있는 소수자와 여성들을 어떻게 대표하고 어떻게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4.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편집자주]뉴스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040세대(30~40대) 교수와 전문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정치·외교안보·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소장(少狀) 학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현장과 소통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기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고민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45)는 경제와 외교 등 핵심 국정과제가 여성, 소수자 문제와 분리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기 정부가 '소수자를 어떻게 정치에 참여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 교수는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뉴스1과 진행한 '3040, 차기 정부에 바란다'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평등을 의식적으로 증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연금 개혁 등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안 속에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가 깊숙이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은 양당에서 젠더 문제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젠더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피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통합'을 위해선 소수자를 정책 결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수자는 경제적 관점에서 중요한 인구"라며 "주변부에 있는 소수자와 여성을 어떻게 대표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건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고 교수와의 일문일답.

성평등 뒤처지면 외교적 결례 범할 수도…젠더 갈등 무서워서 논의 회피하면 안 돼

-차기 정부가 꼭 '해야 하는 것'을 꼽는다면.

▶어떤 정부가 출범하든 가장 큰 화두는 경제 성장이나 새로운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적응일 텐데, 그에 비해서 여성이나 소수자 등 사회적 문제는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됐든 국민의힘 정부가 됐든 경제와 외교 현안이 여성이나 소수자 문제와 괴리돼 있지 않다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연금 문제 속에는 성별 임금 격차, 여성들의 탈지방 현상, 여성 노인 등 젠더 관련 문제가 숨어 있다. 하지만 젠더 문제는 2030 세대 간 갈등으로만 축소돼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경제 문제와 안보 문제가 강조되고, 소수자 문제는 선거 때 잠깐 나와도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깊은 논의가 살아나야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과 통합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

-차기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꼽는다면
▶젠더 문제를 확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주한 영국대사가 남성 편중된 패널 구성을 지적하며 통일부 국제 포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치 엘리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다양성과 성평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힘 중심의 안보 논의에만 집중하다 보면 외교적 결례를 범하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평등을 의식적으로 증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1대 대선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꼭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꼽는다면
▶지금으로서는 여야 정치권이 이런 문제에 대해 크게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수면에 나온 얘기가 없다. 기본적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성평등 문제에 있어서는 일관성 있는 이념적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전략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촉발하는 건 굉장히 좋지 않다. 사회의 아픈 곳을 끄집어내서 상처가 오래가게 만드는 것이다. 젠더 갈등이 20대 대선에 이용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 단지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은 양당에서 이 문제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 여성의 정치 대표성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 징병제에 여성이 참여해야 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예산 편성 등 중요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젠더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

여성 인재 육성하려면 구조부터 바꿔야…능력 있어도 경력으로 이어지는 길 없어

-현재까지 나온 21대 대선 공약에 사회적 약자, 성소수자, 인권 신장과 관련된 뚜렷한 공약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은 굉장히 보수적인 사회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답변이 가장 낮다. 남성이 여성보다 정치 지도자로 적합하다는 질문에 한국은 반대보다 찬성이 더 많다. 스웨덴은 찬성이 거의 없고 강한 반대가 70%다. 대만도 강한 반대가 훨씬 많다. 저는 이걸 양극화돼 있다고 표현한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성평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면 공약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대선 주자들이 관심이 없는 것도 있지만 사회 자체가 여성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합의가 뚜렷하지 않다.

-한국 정치가 소수자와 여성의 정치 참여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할당제에 대한 반감이 많다. 그러나 '왜 할당제를 통해서 여성을 대표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문헌과 연구가 이미 있다. 할당제를 하지 않으면 현재의 불완전함을 고치기 힘들다. 공천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대선 후보는 전부 광역단체장 경험이 있다. 도지사나 시장 경험을 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처럼 돼 있지만, 한국에서 지금까지 여성 광역단체장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여성들은 광역단체장에 진입하기가 국회의원 입문보다 힘들다. 정당의 구조를 살펴보면 소위 말하는 남성 중심 카르텔이 될 수밖에 없다. 능력이 돼도 경력이 안 되면 할 수가 없다. 경력까지 이어지는 길이 막혀 있다면 어떻게 대선 주자까지 올라갈 수 있겠느냐.

-여성 정치인의 대선 출마 등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정당의 노력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한국은 어느 정도 성숙한 민주주의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제도를 통한 권력 선출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 결정을 누가 하고 정책 결정에 누가 참여하는가가 정치의 꽃이다. 그런데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적인 힘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정당이 이런 부분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여러 유명 여성 정치인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당 내에서 여성 인재 풀을 확보하고 당선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지금 정당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여성은 정당이 필요하고, 여성의 진출은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기업은 시장의 압박이 있지만 정당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더 경직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노른자 정치' 넘어야…소수자 끌어안아야 통합 가능

-최근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젠더 갈등의 원인은.

▶젠더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갈등이 있는데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연된 사회 변화가 표출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소비가 쉽게 이뤄진다. 한국의 여성들은 변하고 있고 노동에 참여하지만, 저대표되고 있다. 하지만 여경 사건과 곰탕집 사건처럼 주변적 사건이 재생산된다. 한국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치적 힘이 크다고 느껴진다.

-혐오 정치와 진영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이를 어떻게 완화해야 하는가.

▶혐오의 기반은 단순한 불안함에서 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중국 혐오를 하면 정치인들이 반응할 텐데 이런 부분을 멈추고 불안함을 어떤 식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치가들이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나.

▶첫째는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지방소멸, 노인 문제, 국민연금 등이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다. 이런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해결하려면 여성 참여, 여성 노동, 여성들의 돌봄 의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할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정치를 노른자 정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노른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국가의 핵심이다. 노른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놔둬도 일하고 혁신할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들을 애도 낳게 하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다 보니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게 당연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밀려나는 사람들은 사회 정의적인 관점이 아닌, 경제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인구다. 왜냐하면 노른자들이 이 사람을 다 먹여 살려야 한다.

둘째는 정당이 통합을 위해서는 주변부에 있는 소수자와 여성들을 어떻게 대표하고 어떻게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건지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도 여성 교수가 필요할 때 들러리로 많이 간다. 이젠 그러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런 피로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내가 힘도 없는데 그냥 머리 채워주는 건 남자도 원하지 않지만, 여성도 이젠 원하지 않는다.

☞고민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후 2012년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시카고 대학 강사와 뉴저지 윌리엄 패터슨 대학, 뉴욕시립대학 조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이화여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만국립대 및 일본 와세다대학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정체성 정치, 소수자 및 여성 정치 빅데이터 분석, 설문 실험,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다양한 방법론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