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지대한. (사진=지대한 측) 2025.04.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5/02/202505020801589886_l.jpg)
[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배우 지대한(56). 이름은 낯설지만 얼굴은 낯익다. 30년 세월 동안 그는 한국 영화 곳곳에 존재해왔다. 때로는 스쳐가는 단역으로, 때로는 구석의 조연으로.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건 2006년 영화 '해바라기' 속 '병진이 형'이었다. "아직도 '해바라기'하면 많은 분이 병진이 형을 기억하시더라고요. 사실 영화에선 '고맙다' 그거 했을 뿐인데…"
지난달 30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지대한은 그 병진이 형처럼 수더분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88년도에 처음 충무로에 올라왔어요. 영화 한답시고…그때 여긴 진짜 영화계의 메카였죠."
그는 20대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실제로 보면 눈매는 서글서글하고 콧대는 반듯하다. "솔직히 20대 때 이병헌보다 잘생겼어요." 장난기 어린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청춘은 낭만만으론 채워지지 않았다. 배우의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벽은 높았다. 특히 그를 오래 따라다닌 꼬리표가 있었다. 1990년대 인기 프로그램 '경찰청 사람들'에 출연했다는 경력이다.
"그 시절 '경찰청 사람들' 인기는 대단했죠. 문제는 그게 주홍글씨처럼 남았다는 겁니다." 캐스팅 디렉터들은 그를 "재연 배우 출신"으로 여겼고, 선입견은 단단했다. "그 꼬리표를 떼는 데 오래 걸렸어요."
영화 오디션에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다들 알아보는 거죠. '경찰청 사람들' 출신이라고. 몇십억, 몇백억이 들어가는 영화에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쓰긴 어렵다는 거예요."
결국 그는 방송을 접고 무대로 돌아갔다. "방송국 근처도 안 갔어요. 연극 무대에 서면서 단역 오디션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만난 영화가 바로 2001년작 '파이란'이다.
![[서울=뉴시스] 영화 '올드보이'와 '파이란'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지대한과 최민식. (사진=에그필름, 튜브픽쳐스) 2025.04.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5/02/202505020801590841_l.jpg)
최민식 주연의 이 영화에서 그는 이름 없는 '똘마니2'로 출연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강렬했다. 건달 강재(최민식)에게 깝죽거리다 연탄으로 얻어맞는 장면은 허세 가득한 양아치의 허망함을 선명히 드러냈다.
"'파이란'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경찰청 사람들 배우'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었죠. 사람들이 저를 '파이란에 출연했던 배우'로 기억하기 시작한 거죠."
최민식은 그의 연기 인생에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기회는 반드시 오는데, 그걸 잡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 말이 큰 힘이 됐죠."
'요즘도 연락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민식이 형님이랑 '올드보이' 찍을 때 같이 복싱도 했거든요. 그 때 참 좋았죠." 비록 연락은 뜸해졌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든든한 '형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 최민식 같은 톱배우가 부럽진 않을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주인공은 주인공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죠.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대신 그는 역할의 크기보다 순간의 몰입을 더 귀하게 여긴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전 정말 설레요.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제대로 판만 깔아주고 카메라 들이대면 그 때 저는 진짜 설레요."
물론 현장은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몇몇 무례한 스태프와 톱스타에게 무시 당한 적도 있었다. "예전엔 그런 일이 많았죠. 지금은 좀 나아졌고요."
익명을 전제로 과거 몇몇 배우의 갑질에 대한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연기를 '즐겁게' 해왔다고 강조했다. "저는 그들이 갈궈도 즐거웠어요. 그래, 너는 갈궈라. 난 계속 연기할 거니까."
![[서울=뉴시스] 영화 '해바라기' 속 지대한(맨 왼쪽). (사진=영화사 아이비젼) 2025.04.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5/05/02/202505020802000705_l.jpg)
100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가 가장 기억하는 작품은 의외였다. 심형래 감독의 '파워킹'. 괴물 분장을 하고 찍은 B급 액션 영화였다.
"아무도 날 쓰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도 '드디어 내 역할이 생겼다'는 설렘이 컸죠. 분장만 3시간 했어요." 그날은 공교롭게도 친형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다. 그는 "가면 쓴 채 울면서 연기했다"고 떠올렸다.
연기는 그렇게 그의 삶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어요. 작은 배역이라도 무대 위에 올라가면 진심으로 즐겁게. 언제든 멍석만 깔리면 달려가서 연기할 준비가 돼 있어요."
이 마음으로 그는 유튜브 채널 '병진이 형'을 운영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수익 좀 나면 CG도 넣고, 조명도 빵빵하게 해서 진짜 때깔 좋은 콘텐츠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세아항공직업전문학교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며, 연기 경험을 나누는 데도 열심이다.
"제가 톱스타는 못 해봤지만, 짬은 있잖아요. 그걸 전부 나눠주고 싶어요. 혹시 아나요? 제가 가르친 제자 중에 톱스타가 나올지. 그땐 저도 톱스타 덕 좀 보겠죠. 하하."
"그저 한 명의 광대일 뿐"이라는 그는 연기를 놀이로 여긴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주어진 상황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진짜 좋은 배우가 되어 있을 거예요. 놀자, 놀자, 신나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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