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리는 기술로 말하지, 입으로 장사 안 해.”
“좋은 제품이면 알아서 팔려.”
“홍보는 위기 오면 하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을 여전히 자신 있게 말하는 경영진이 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이 말들은 착각일 뿐이다. 아니, 오만이다.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이 모르면 끝이다. 그리고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로 지켜진다.
넷플릭스, 요금 인상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2011년 넷플릭스는 DVD 대여와 스트리밍 요금을 분리하며 사실상 가격을 인상했다. 결과는 80만 명의 가입자 이탈과 주가 폭락. 위기였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CEO의 직접 사과와 함께 방향을 틀었다. “콘텐츠로 보답하겠다”는 전략 아래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 오리지널 시리즈를 출시했고, 이는 브랜드 회복의 신호탄이 됐다. 단순한 위기 수습이 아니라, “우리가 줄 수 있는 진짜 가치는 콘텐츠”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점에서 이 PR은 성공적이었다. 위기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의한 사례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타이레놀
1982년 미국, 타이레놀 캡슐에 독극물이 섞여 7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은 즉각적으로 3,100만 병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하고 전사적 조사 착수, 모든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나섰다. 당시에는 이런 위기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지만, 그들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소비자와 대화했고, 신속히 업계 최초로 ‘봉인 포장’을 도입한 새 패키징 시스템을 도입해 신뢰를 높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초기에는 불신이 컸지만, 회사의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오히려 ‘신뢰의 상징’으로 브랜드를 바꿔놓았다. 지금까지도 이 사례는 PR 역사에서 최고의 위기 대응 전략으로 회자된다.
홍보는 소화기가 아니다. 예방 주사다
홍보를 위기 시에만 사용하는 기업은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평소에 꾸준히 스토리를 쌓아온 기업은 위기 상황에서도 “저 회사는 뭔가 다를 거야”라는 기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그 신뢰가 기자의 전화 한 통, 소비자의 클릭 한 번, 파트너사의 계약으로 이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보다 ‘스토리’를 먼저 설계했다. 그가 무대에 올라 청중을 향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믿음’을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윗 하나로 주가를 흔든다. 그의 말 한마디가 시장과 대중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홍보다.
신뢰는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만들어둬야 한다. 홍보팀은 ‘기사 내는 부서’가 아니다. ‘프로액티브 PR’(평소 신뢰 구축)과 ‘리액티브 PR’(위기 대응) 모두 중요하다는 것과 평소 신뢰가 위기 시 기업을 지켜준다는 논리도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기업의 태도, 방향, 브랜드의 성격을 세상과 연결하는 ‘해석자’이자 ‘디자이너’다. 그리고 그들이 평소에 쌓아둔 신뢰는, 위기 때 가장 값진 자산이 된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은 평소에 “성과가 안 보여”, “이건 마케팅에서 하면 되잖아”라며 홍보팀을 비용 항목으로 본다. 그러다 위기 오면 “지금 당장 기자회견 해. 기사 내!”라고 외친다. 이미 언론도, 소비자도 등을 돌렸는데 말이다.
당신 회사는 지금 어떤가? 홍보팀이 있는가? 있다면 전략적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없다면, 당신은 시장과 연결된 ‘입’이 없는 상태다. 제품은 말이 없고, 기술은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말하고, 설득하고, 해석하는 건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홍보팀이다.
세상은 실수보다 태도를 본다. 그리고 그 태도를 세상과 연결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당신 회사의 PR팀이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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