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展…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상상 속 어룡·귀룡 장식한 청자 눈길…국보 포함 총 97건 한자리에
석류가 원숭이보다 크다고?…푸른 빛으로 완성한 고려의 상상력(종합)국립경주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展…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상상 속 어룡·귀룡 장식한 청자 눈길…국보 포함 총 97건 한자리에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작은 공처럼 생긴 형체에 원숭이가 딱 달라붙었다. 목뒤에는 작은 방울을 달았고, 입은 살짝 벌린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원숭이가 매달린 건 석류 열매.
실제라면 원숭이가 석류보다 훨씬 크지만, 높이 8㎝ 연적에는 상상력이 묻어난다. 석류 위로 물을 부으면 원숭이 입으로 물이 나오는 점도 웃음을 자아낸다.

먹물을 담는 항아리에는 원숭이가 어떻게 표현돼 있을까.
높이가 3.9㎝에 불과한 작은 먹 항아리는 원숭이가 두 팔을 뒤로 돌려 업은 형태다.
약 900년 전 고려 사람들이 푸른 빛으로 정교하게 빚은 원숭이들이다.
고려 특유의 오묘한 빛깔로 다양한 형상을 빚어낸 상형(象形) 청자가 경주를 찾는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남아있는 경주에서 처음 소개하는 청자 전시다.
올해 3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새롭게 꾸몄다. 국보 3건, 보물 7건을 포함해 고려 상형 청자와 관련 유물 97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2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고려청자의 우수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양한 형상을 빚은 상형 청자는 최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밖에서 고려 상형 청자를 조명한 첫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려 상형 청자는 색과 조형성 모두를 갖춘 공예품으로 꼽힌다.
고려 사람들은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으로 다양한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용, 기린과 같은 상상의 동물부터 복숭아, 석류, 연꽃 등의 식물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도 그 매력을 높게 평가했다.
"고려의 상형 청자 작품들을 보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모두 늣늣하게 때를 벗었다는 느낌을 깊게 받게 된다."(최순우 '한국미, 한국의 마음'에서)
전시는 물이나 술 등을 따르는 용도의 주자(注子·주전자를 뜻함) 두 점으로 시작된다.
하나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주자, 다른 하나는 상상 속 귀룡(龜龍)으로 꾸민 주자다.
윤서경 학예연구사는 "상형 청자는 일반 그릇과는 달리, 정밀한 계획과 디자인이 필요하다"며 "두 주자를 보면 생명력, 생동감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명품' 상형 청자를 모은 부분이다.
넓은 판 아래에 입을 벌린 두 마리 사자를 장식한 청자 베개, 연꽃 줄기를 입에 물고 있는 귀룡 모양 연적 등 9점을 개별 진열장에 전시한다.
청자의 색과 모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도 특히 신경 썼다.
김현희 학예연구과장은 "바닥 조명을 조정하는 데도 반나절 이상 걸렸다"며 "고려 상형 청자의 색과 모양을 가능한 한 담백하게, 또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말했다.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귀룡을 형상화한 주자는 거북의 등 무늬를 형상화한 귀갑문 안에 '王'(왕) 자를 빼곡히 새겨 귀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참외 모습을 본떠 만든 연적은 고려시대 유물 중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잎사귀 두 개를 서로 붙여서 물을 넣고 따르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같은 귀룡 장식이라도 용도에 따라 고개를 든 각도가 다른 점도 볼거리다.
여러 유물 중 단연 압권은 어룡(魚龍) 모양 주자다.
용과 물고기가 합쳐진 어룡은 예부터 물을 자유롭게 다루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머리를 살짝 든 채 꼬리를 치켜올린 어룡은 비늘까지도 생생히 표현돼 있다.

관람객들은 오직 어룡 모양 주자만 전시한 공간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모양을 표현하는 상형의 전통을 경주와 연결한 점은 여느 전시와 다른 점이다.
전시장에서는 오리와 사자 모양을 한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고려청자를 나란히 배치했다.
예컨대 경주 구황동 원지에서 출토된 잔은 오리로 보이는 새가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인데, 비슷한 모습의 청자 연적과 비교해볼 수 있다.

월지에서 출토된 사자 모양의 향로 뚜껑은 발톱 끝에 힘을 준 것처럼 바닥에 긁힌 흔적까지 생생하게 표현돼 있어 고려 청자에 견줄 만하다.
박물관 측은 "고려 상형 청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상형 토기와 상형 용기가 있었다"며 "상형의 오랜 전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학예연구사는 "비색으로 예쁜 모양을 빚으면서도 기능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고려 도자 공예의 최정수, 상형 청자의 매력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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