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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가 원숭이보다 크다고?…푸른 빛으로 완성한 고려의 상상력(종합)

연합뉴스

입력 2025.05.02 15:15

수정 2025.05.02 15:15

국립경주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展…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상상 속 어룡·귀룡 장식한 청자 눈길…국보 포함 총 97건 한자리에
석류가 원숭이보다 크다고?…푸른 빛으로 완성한 고려의 상상력(종합)
국립경주박물관, '푸른 세상을 빚다…'展…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상상 속 어룡·귀룡 장식한 청자 눈길…국보 포함 총 97건 한자리에

석류 열매에 매달린 원숭이 (출처=연합뉴스)
석류 열매에 매달린 원숭이 (출처=연합뉴스)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작은 공처럼 생긴 형체에 원숭이가 딱 달라붙었다. 목뒤에는 작은 방울을 달았고, 입은 살짝 벌린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원숭이가 매달린 건 석류 열매.

실제라면 원숭이가 석류보다 훨씬 크지만, 높이 8㎝ 연적에는 상상력이 묻어난다. 석류 위로 물을 부으면 원숭이 입으로 물이 나오는 점도 웃음을 자아낸다.

"모두 원숭이 입니다" (출처=연합뉴스)
"모두 원숭이 입니다" (출처=연합뉴스)

먹물을 담는 항아리에는 원숭이가 어떻게 표현돼 있을까.

높이가 3.9㎝에 불과한 작은 먹 항아리는 원숭이가 두 팔을 뒤로 돌려 업은 형태다.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에서 항아리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이 간다.

약 900년 전 고려 사람들이 푸른 빛으로 정교하게 빚은 원숭이들이다.

고려 특유의 오묘한 빛깔로 다양한 형상을 빚어낸 상형(象形) 청자가 경주를 찾는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남아있는 경주에서 처음 소개하는 청자 전시다.

올해 3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였던 전시를 새롭게 꾸몄다. 국보 3건, 보물 7건을 포함해 고려 상형 청자와 관련 유물 97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고려 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출처=연합뉴스)
고려 상형 청자, 첫 경주 나들이 (출처=연합뉴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2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고려청자의 우수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양한 형상을 빚은 상형 청자는 최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밖에서 고려 상형 청자를 조명한 첫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려 상형 청자는 색과 조형성 모두를 갖춘 공예품으로 꼽힌다.

고려 사람들은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으로 다양한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용, 기린과 같은 상상의 동물부터 복숭아, 석류, 연꽃 등의 식물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명품' 고려 상형 청자 (출처=연합뉴스)
'명품' 고려 상형 청자 (출처=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도 그 매력을 높게 평가했다.

"고려의 상형 청자 작품들을 보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모두 늣늣하게 때를 벗었다는 느낌을 깊게 받게 된다."(최순우 '한국미, 한국의 마음'에서)
전시는 물이나 술 등을 따르는 용도의 주자(注子·주전자를 뜻함) 두 점으로 시작된다.

하나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주자, 다른 하나는 상상 속 귀룡(龜龍)으로 꾸민 주자다.

윤서경 학예연구사는 "상형 청자는 일반 그릇과는 달리, 정밀한 계획과 디자인이 필요하다"며 "두 주자를 보면 생명력, 생동감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보 '청자 어룡형 주전자' (출처=연합뉴스)
국보 '청자 어룡형 주전자' (출처=연합뉴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명품' 상형 청자를 모은 부분이다.

넓은 판 아래에 입을 벌린 두 마리 사자를 장식한 청자 베개, 연꽃 줄기를 입에 물고 있는 귀룡 모양 연적 등 9점을 개별 진열장에 전시한다.

청자의 색과 모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도 특히 신경 썼다.

김현희 학예연구과장은 "바닥 조명을 조정하는 데도 반나절 이상 걸렸다"며 "고려 상형 청자의 색과 모양을 가능한 한 담백하게, 또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말했다.

신령스러운 존재 '어룡' (출처=연합뉴스)
신령스러운 존재 '어룡' (출처=연합뉴스)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귀룡을 형상화한 주자는 거북의 등 무늬를 형상화한 귀갑문 안에 '王'(왕) 자를 빼곡히 새겨 귀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참외 모습을 본떠 만든 연적은 고려시대 유물 중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잎사귀 두 개를 서로 붙여서 물을 넣고 따르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같은 귀룡 장식이라도 용도에 따라 고개를 든 각도가 다른 점도 볼거리다.

여러 유물 중 단연 압권은 어룡(魚龍) 모양 주자다.

용과 물고기가 합쳐진 어룡은 예부터 물을 자유롭게 다루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머리를 살짝 든 채 꼬리를 치켜올린 어룡은 비늘까지도 생생히 표현돼 있다.

고려의 상형 청자 (출처=연합뉴스)
고려의 상형 청자 (출처=연합뉴스)

관람객들은 오직 어룡 모양 주자만 전시한 공간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모양을 표현하는 상형의 전통을 경주와 연결한 점은 여느 전시와 다른 점이다.

전시장에서는 오리와 사자 모양을 한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고려청자를 나란히 배치했다.

예컨대 경주 구황동 원지에서 출토된 잔은 오리로 보이는 새가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인데, 비슷한 모습의 청자 연적과 비교해볼 수 있다.

월지에서 출토된 사자 모양의 향로 뚜껑 (출처=연합뉴스)
월지에서 출토된 사자 모양의 향로 뚜껑 (출처=연합뉴스)

월지에서 출토된 사자 모양의 향로 뚜껑은 발톱 끝에 힘을 준 것처럼 바닥에 긁힌 흔적까지 생생하게 표현돼 있어 고려 청자에 견줄 만하다.

박물관 측은 "고려 상형 청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상형 토기와 상형 용기가 있었다"며 "상형의 오랜 전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학예연구사는 "비색으로 예쁜 모양을 빚으면서도 기능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고려 도자 공예의 최정수, 상형 청자의 매력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 (출처=연합뉴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 (출처=연합뉴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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