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

[기고] 비트코인, 통화질서 전환기의 실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7 18:23

수정 2025.05.07 18:23

[디지털 방코르: 21세기 글로벌 통화 질서를 묻다-4회]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파이낸셜뉴스] 현대 통화질서는 통화정책의 미세 조정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 체제는 무제한 신용 창출과 과도한 자산 금융화로 금융 부문을 비대하게 만들었고, 글로벌 부채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축통화국의 국내 정치에 좌우되는 통화·무역 정책까지 더해지며, 달러 체제의 불안정성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 균열은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다. 과잉 신용과 금융 팽창은 거시경제 불균형을 키웠고, 결국 자산시장 폭락으로 이어졌다.

이때 비트코인은 ‘탈정치화된 신뢰’와 ‘발행자 없는 화폐’라는 개념을 현실에 구현한 첫 사례로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신뢰는 누가, 어떻게 보증하는가’라는 물음에 과학적 설계로 응답한 새로운 질서였다.

비트코인은 ‘화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미첼 이네스에 따르면, 화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채권-채무 관계의 기록’이자, 신용을 정산하는 수단이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신용 관계의 형성과 정산을 코드로 구현한 분산 시스템이다. 기존 법정화폐가 국가의 강제력에 기반한 ‘위임된 신뢰’에 의존한다면, 비트코인은 시스템 내부 규칙을 통해 신뢰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이 구조는 열역학, 정보이론, 게임이론에 기반한 수리·물리적 질서 위에 세워져 있다. 채굴자는 실제 에너지를 투입해 무작위 연산을 수행하고, 그 결과로 생성되는 블록은 위변조가 불가능한 질서의 단위가 된다. 이는 신뢰 형성에 실질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원리를 반영한 설계다.

또한 비트코인은 정보의 무결성을 확보하는 시간순 기록 체계이며, 각 블록은 검증 가능한 타임스탬프의 연쇄로 구성된다. 이 시스템은 중앙 조정자 없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정렬함으로써 자생적으로 유지된다. 참여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네트워크 운영에 기여하며, 그 결과 시스템의 내적 신뢰 기반은 더욱 강화된다.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니다. 사회적 채무 관계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검증하는 탈중앙 회계 질서이자, 탈국가적 화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새로운 통화 인프라다. 이 시스템에서 채굴자는 새로운 화폐 단위를 발행하고 거래의 유효성을 수학적 연산으로 검증하며, 신뢰는 네트워크의 합의 알고리즘을 통해 유지된다.

이러한 구조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달러 체제의 한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달러는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57.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보다 9%p 감소한 수치다. 동시에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통화질서에 대비하고 있다.

결국 비트코인은 ‘신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자, 16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도전적 실험이다. 이 실험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트코인이 기존 통화질서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임을 입증한다.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다음 회차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신뢰와 거버넌스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 전환기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선택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