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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지방의회와 지방의회법 제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7 19:20

수정 2025.05.07 19:35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최근에 '지방의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선거 공약사항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들린다. 지방의회에 관한 법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법이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의회 관련 조항들을 따로 떼어 독자적인 법률을 만들자고 한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지방의회가 처해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현행 제도상 지방의회는 자신들의 의정활동을 보조해 줄 기구(의회사무처)를 스스로 조직할 권한이 없다. 자치단체장의 몫이다. 의회 운영과 관련된 예산도 자치단체장이 편성한다. 이런 여건에서는 의회가 집행기관(단체장)에 대한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방의원들은 '의회조직권'과 '의회예산 편성권'을 의회에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미 있는 요구이고, 필요한 입법이다. 그런데 이런 취지라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도 될 것인데 왜 굳이 별도 법률 '제정'인가?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지방의회의 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방의회도 자신들에 관한 독자적 법률을 가짐으로써 자치단체장과 대등한 제도적 권위를 부여받고자 하는 의도 말이다.

그러나 독립 법률을 제정하자는 주장에 앞서 몇 가지 짚어 봐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는 지방자치법의 주인은 '단체의 장'이 아닌 '지방의회'라는 것이다.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의 자치제도에서는 지역주민의 주인 역할을 대신해 주는 의회가 자치의 요체이다. 그래서 처음 지방자치를 실시할 때 의회 구성이 단체장 선출보다 먼저 이루어졌고, 지방자치법은 의회를 단체장보다 앞서 기술하고 있다. 결국 지방자치법에서 의회 관련 규정을 떼 내자는 주장은 마치 집주인이 자기 집을 나가겠다는 소리와 같다.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다. 둘째, 지방의 의회 운영 자율성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지방의회법이 따로 제정된다면 앞으로 의회 관련 사항은 조례보다는 동 법률에 넣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지방의회가 알아서 정할 사항들도 정부나 국회가 정하게 된다는 소리가 된다. 그만큼 중앙의 간여 폭이 커지는 것이다. 이 또한 자치제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의회의 권위를 높이려다 중앙에 더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자치의 본령인 의회만큼은 지역적 자율성이 최대한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보다 조례로 정하는 것이 더 좋다. 지역 스스로 각자 상황에 맞게 관련 제도를 고쳐나가기가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머지않아 지금의 지방의회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자치단체의 권력체제는 집행기관과 의회 간 대립구조로 되어 있다. 이 구조는 모든 지역이 동일하다. 그러기에 의회 운영방식도 전국이 비슷하고, 하나의 법률에 담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현행 형태뿐만 아니라 의회 속에 집행기관을 넣거나, 의회 대신 위원회를 두거나, 의회가 집행기관의 장을 선임하는 등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권력구조가 나올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관련 특별법 제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지방자치법이 관련 특별법을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된다면 의회의 다양한 운영 모습들을 단일 법률로 규정하기 어렵게 되고, 불가피하게 지금의 지방자치법상 규정 내용도 상당부분을 조례로 넘겨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의회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입법 낭비가 될 공산이 크다.

생각건대 지방의회의 자율성 확보는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서 구현하는 것이 정도(政道)이자 첩경(捷徑)일 것이다.
또한 지방의회의 위상은 법률 규정의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의회 역할에서 찾는 것이 자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