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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경영 도움 안 되는 ‘전문성 제로’ 사외이사 개선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07 19:20

수정 2025.05.07 19:20

경영인 15%뿐, K디스카운트 요인
계열 편입 규제 풀고 구조 개편해야
기업 사외이사들. /이미지=연합뉴스
기업 사외이사들. /이미지=연합뉴스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제가 도입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까지 헛돌고 있다. 유능한 경영인을 선임하기 곤란한 규제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만 낡은 제도 틀에 갇혀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을 이유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7일 발표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활동 현황 및 제도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 사외이사 중 경영인 출신은 고작 1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계 출신이 36%였고, 공공부문 전직 관료도 14%나 됐다.

절반이 교수와 전직관료 출신이었는데 경영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해외 기업들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국 S&P500 기업의 경우 사외이사 중 경영인이 70%를 넘는다. 일본 닛케이225 기업들도 경영인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나 미국 상장사의 관료 출신 사외이사는 고작 4%, 일본은 3%에 불과하다. 학계 출신도 각각 8%, 12% 정도다. 우리만 관료와 학계 특정 직군의 사외이사가 비대한 이유는 한국에만 있는 공정거래법상 계열 편입 규제 영향이 크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독립경영이 승인된 경우를 제외하고 사외이사의 개인회사는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로 자동 편입된다. 이 때문에 경영, 산업 전문가들이 사외이사를 꺼리고 도중에 사임하는 사례도 상당하다. 해외에선 별다른 계열 편입 규제가 없다. 다른 기업을 운영하거나 별도 창업계획이 있는 경영인도 자유롭게 사외이사를 맡는다. 유능한 경영자들이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에 걸림돌이 없는 것이다.

사외이사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주주의 경영 독단을 견제하고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상법으로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제도가 이렇게 헛도는 이유를 계속 모른 척할 순 없지 않겠나. 제도가 엉성하다 보니 사외이사는 대외 로비스트 창구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상의 보고서를 보면 국내 사외이사는 법조계 출신도 14%나 된다. 미국의 경우 2%밖에 안 된다. 비교적 비중이 큰 일본도 10% 정도다. 검사, 고위관료 등 권력층 주변 인물을 뽑아 정치 외풍을 막는 용도로 사외이사가 활용되는 것이다. 사법리스크가 있는 기업의 경우 법조 출신 사외이사가 관행처럼 선임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가치를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순 없는 일이다.

전문성이 부족하니 거수기 논란도 매번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경영 판단력이 충분치 못한 사외이사들은 기업 투명성을 높여야 할 본연의 역할을 외면하고 안건마다 찬성에 손을 든다. 그 대가로 고액 연봉과 과한 접대를 받아 사회문제가 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후진적 관행과 제도가 다름아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다. 제도 곳곳에 숨은 디스카운트 복병들을 도려내고 제도 혁신을 이루는 게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외이사는 단순 감시자와 견제세력의 역할을 넘어 전략적 기업 파트너의 가치가 있다. 경영구조를 꿰뚫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사는 그래서 더더욱 필요하다. 사외이사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도 마련돼야 한다.
계열 편입 규제나 엄격한 재직기간 규제는 서둘러 완화해야 한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도 자제돼야 하는 것은 말할 것 없다.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법과 제도를 조속히 손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