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행동원리'
전략적 인식·논리 알아야
미국과 새 협력관계 구축
전략적 인식·논리 알아야
미국과 새 협력관계 구축

결국 핵무기 포기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완전히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 초강대국 미국의 '소프트파워 외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세계적 리더국가로서 미국의 도덕적 역할도 포기하는 외교적 자해도 서슴지 않고 감행했다.
지난주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이 장면은 사전에 정해진 적정한 절차(due process)를 거치지 않고 트럼프가 중요한 정책을 자기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난달 무역상대국에 부과했던 상호관세의 90일 유예도 정작 무역협상을 담당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 일부 측근과만 논의해서 결정한 사실도 미국 의회 무역 관련 청문회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트럼프 특유의 자화자찬식 말이나 행동, 조변석개식 변덕에 가까운 단기 정책 변화에 대한 냉소적 조롱이나 정서적 대응에서 벗어나, 겉으로 드러난 잡음과 먼지를 걷어내고 차분히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구호와 달리 미국은 지금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자비로운' 패권 역할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게 트럼프 정부 전략가들의 인식이다.
루비오 장관이 미국이 탈냉전 이후 '역사의 종언'을 들먹이며,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추구하며 유지하려 한 글로벌 질서는 결국 미국의 국익에 아무 쓸모가 없는 "위험한 착각(dangerous delusion)"이었다고 최근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규모 불법이민과 마약의 유입으로 미국 사회는 그 기반이 불안정해졌고 방위산업과 제조업 기반은 붕괴 일보 직전이며, 국방력은 아시아 지역 패권 구축을 추구하는 중국에 거의 추격당한 상태다.
이런 인식이 미 국방부가 지난달 공개한 '임시 국방전략 지침'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억지와 미국 본토 방어에 대외전략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설정한 배경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듯한 친러시아적 태도, 나토 동맹국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야멸차게 방위비 증액을 강요하는 모습, 동맹국들의 신뢰를 저버리면서까지 시장 논리나 경제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조급함 등은 모두 미국이 지금 느끼는 중국에 대한 유례없는 위기감과 절박감의 소산이다.
우리 경제의 번영과 안보에서 여전히 당분간 대체 불가능한 동맹인 미국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원리'를 규정하는 전략적 인식과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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