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물건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 두는 일.
[사재기]의 뜻을 사전은 이렇게 풉니다. 매점(買占)이라고도 합니다. 한자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매점매석(買占賣惜)이라는 낱말을 자주 썼습니다. 사는 쪽과 파는 쪽의 행위를 모두 반영한 단어입니다.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비싼 값을 받기 위해 상인이 물건 팔기를 꺼리는 일'이 매석이니까요.
사재기를 뜯어봅니다.
예전 사재기 일화입니다. 지금은 찾기 힘든 '솔'이라는 이름의 담배가 있었습니다. 한때 500원 하던 솔(소나무와 관련해서 쓰는 그 솔)은 정부의 담뱃값 조정 계획에 따라 곧 오를 거라는 관측을 낳았었지요. 솔을 좋아하던 애연가들 일부는 사재기에 나섰습니다. 한 갑 사면 될 것을 한 줄(열 갑 의미, 흔히 줄 대신 '보루' 사용) 사두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웬걸요. 담뱃값이 외려 200원으로 내려갔습니다. 몇백원 오를 줄 알았는데, 거꾸로 300원이나 떨어졌지요. 사재기한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한 까치(규범어는 '개비') 피울 시간에 두 까치 피우며 쓰린 속을 달랠밖에요. 사연은 이랬습니다. 1994년 당시 정부가 지방세법에 특례 조항을 만들어 값을 내렸던 겁니다. 서민들을 위한 저가 담배가 필요하다는 게 주요 명분이었습니다. 보기 따라서는 전반적인 담뱃값 인상에 대한 민심 악화를 고려한 꼼수 인하였습니다.
일이 예상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즉흥적이기도 한 쪽대본(드라마 따위에서, 시간에 쫓긴 작가가 급하게 보낸, 바로 찍을 장면의 대본)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와 달리 이따금 열린 결말을 이끕니다. 그게 세상사의 오묘한 이치라고 하면 지나친 확신일까요?
1980년 처음 나온 솔은 한때 시장점유율 60%를 기록하며 연 20억 갑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9년부터는 남북경협의 하나로 북한 공장에서 위탁 생산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채산성은 악화했습니다. 유통 과정에 허점이 생겨 암시장에서 1천원에 거래되기도 했고요. 그러던 끝에 2004년 생산을 멈췄고 이듬해 시장에서도 모습을 감춥니다. 솔의 이런 운명, 정부는 과연 내다봤을까요? 사재기한 흡연자들이 많이들 궁금해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KBS뉴스, 솔담배품귀현상 "구할 수가 없어요" (입력 1999.01.10, 21:00)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96178
2. 연합뉴스, <`솔'담배 25년만에 역사속으로> 전재 한겨레신문 기사 (송고 2005.12.25)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361.html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4.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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