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마주 인생, 대한민국 1등 마주 이종훈 씨 인터뷰
[파이낸셜뉴스] 전국 3개의 경마장 중 부산경남 지역에서 마주(馬主)로 활동 중인 이종훈 씨(63)는 자신이 소유한 경주마로 지난 3월 말 300승을 달성했다. 이는 한국 경마에서 마주가 달성한 최초의 기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1등 마주’ 이종훈 씨는 마주로써 느끼는 책임감과 경주마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경주마는 손대면 깨질 수 있는 값비싼 크리스털과 같다. 그래서 한 마리 한 마리의 일생(一生)이 귀하고 값지다.
경마에서 마주의 1승은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주는 자신의 자금으로 경주마를 구입하고, 구입한 경주마를 조교사에게 위탁해 훈련시킨다. 경주마가 성장하는 동안 필요한 훈련비와 사료비, 인건비는 물론이고 훈련시킨 경주마가 성적이 저조해 생기는 손실 역시 마주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경주마를 단순히 투자의 개념으로 본다면, 이 씨는 한마디로 성공한 투자자인 셈이다.
성공 비결을 물으니,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좋은 인연이 가져온 결과라고 답했다. 기다림이 곧 마주의 역할이라고도 했다. “제가 해야 할 고민을 현장에서 훈련하는 조교사님들이 대신 다 해준 덕분입니다. 마주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책임지는 것뿐이에요. 잘 되면 말 덕, 기수 덕, 조교사 덕이고, 잘못되면 내 복이 없어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경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이었다. 해방 전 대구 벌마동 경마장 인근에서 자란 이 씨의 아버지는 경마장 풍경을 자주 회상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경주마들이 대구역에서 벌마당까지 오는 모습이 그렇게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기수 복장을 한 기수들과 그의 가족들이 짐을 끌고 오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고 하셨어요.”
이 씨는 2004년 부산 경마장이 개장했을 때, 지인의 권유로 마주 생활을 시작했다. “특별한 꿈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그저 경마와 관련된 추억이 있는 아버지께 마권이라도 한 번 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가 마주가 된 덕택에 그의 아버지는 여러 번 경마장을 찾았고, 아들 이 씨의 말이 큰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는 시상대에 함께 올랐다. 마주를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등 마주 이 씨에게도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련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깊은 슬럼프를 겪었고 적자가 계속됐다. 마주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맡긴 조교사들을 믿으며 참고 기다리는 길을 택했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화를 내면 오히려 더 나빠질 뿐이죠. 말을 훈련하는 조교사님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조교사를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소유한 말이 경주에서 승리했을 때 주는 기쁨이 크지만, 돌아서면 걱정과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는다. “말은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이 씨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면서, 우승 직후 조교사에게 항상 먼저 하는 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마주로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말의 부상이다.
이 씨는 “마주들이 가장 싫어하는 전화가 경마장에서 아침 10시 이전에 걸려오는 전화”라며 “간밤에 무슨 사고가 났다는 뜻이거든요”라고 털어놨다.
‘마주가 생각하는 경마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말은 눈이 참 선량하고, 근육은 헤라클레스처럼 멋집니다. 그런 동물이 사람과 교감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달리는 모습은 한순간도 시선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압도적인 에너지와 열기가 바로 경마가 주는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요?”
paksunbi@fnnews.com 박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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