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신구, 박근형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기부 공연
[파이낸셜뉴스] “일생을 두고 한 우물을 파십시오. 물이 나옵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한 청년의 질문에 89세 신구는 짧게 응답했다. 13일 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더 파이널’ 기부 공연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GV)에서다.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두 배우, 신구(89)와 박근형(85)이 함께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더 파이널’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무대는 2023년 12월 초연을 시작으로, 2024년 앙코르 공연과 전국 21개 도시 투어까지 이어진 대장정의 정점을 장식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무대다.
특히 13일 공연은 청년 예술인을 위한 ‘연극내일기금’ 기부 공연으로 사회적 의미도 더했다. 가수 출신 배우 최민호가 사회자로 재능 기부에 나섰다.
신구와 박근형은 ‘무대의 거목’다운 내공과 존재감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공연의 재미와 완성도뿐만 아니라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판 두 배우에 대한 경외감은 이날 공연 후 우레와 같이 터진 박수에서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뚜렷한 사건 전개나 인물 변화, 결말이 없는 부조리극이다.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어느 황량한 시골길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둘은 매일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고, 막간에 포조와 그의 하인 럭키가 등장해 또 다른 부조리와 권력 구조를 보여준다.
‘고도는 무엇이냐’는 질문은 매번 반복된다. 이날도 관객석에서 같은 질문이 나왔다.
박근형은 “나는 이미 고도를 여러 번 만났다. 관객 여러분도 각자의 인생에서 고도를 만나실 것”이라고 답했다.
신구는 “이 작품이 제 인생극”이라고 했다. “제게 고도는 기도입니다. 각자 마음속의 기도이기도 하지요. 자유일 수도, 돈이나 명예일 수도 있어요. 병마와 싸우는 사람에겐 죽음일 수도 있겠지요. 저에게는 고도를 기다린 이 인생 자체가 곧 고도였습니다.”
막 성인이 된 청춘의 불안감이 잔뜩 묻어난 질문도 나왔다. “간절히 기다리던 고도가 내 기대보다 못할까봐 불안하기도 하다”는 물음에 연출을 맡은 오경택은 “고도가 반드시 위대하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다”며 “요즘은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란 말도 있다. 그런 하루를 살아낸 것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답했다.
박근형은 “항상 준비하자”고 조언했다. “무작정 기다리면 안 돼요.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뜨죠. 고도도 그런 겁니다. 노력하십시다.”
그리고 신구는 “일생을 두고 한 우물을 팔라"며 자신의 인생 경험이 녹아난 간결한 조언을 건넸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여고생은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본 배우들이 내 눈앞에서 직접 연기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떨렸고 흥분됐다"며 "신구와 박근형 두 분이 이 무대에 계신다는 그 자체만으로 제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음악이 있는 뮤지컬과 달리 연극은 말맛이라고 할까. 대사에 집중할 수 있어 연극만의 매력이 있다"며 "작품이 좋으면 원작까지 찾아보게 된다"며 긍정적 영향도 짚었다.
한편 '고도를 기다리며 더 파이널' 서울 공연은 전 회차 매진돼 예매가 불가능하다. 취소표를 운 좋게 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관객이 이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전국 투어 공연 뿐이다. 현재 구리(5월 30~31일), 대구(6월 6~8일), 천안(6월 13~14일), 군산(6월 20~21일), 당진(7월 18~19일) 공연이 확정됐다. 이후 음성, 부산, 인천에서도 공연이 예정돼 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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