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록적인 산불이 전국을 불태우면서 온 세상을 말라붙게 하더니 어느새 이른 장마 걱정을 해야 하는 때가 됐다. 지난주 보슬비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호우주의보까지 띄울 만큼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출퇴근길에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올해 이른 장마의 예고편이라고 봐야 할까.
기상청은 올해 여름도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 발생도 잦을 것으로 보여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기후위기로 예측이 어려운 극한 호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데다 올해는 봄철 영남지역 대규모 산불 영향으로 홍수 위험이 높아진 상태다.
국가 예산과 소득, 기술은 높아지고 있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기상청 등이 펴낸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여름 태풍과 호우에 의한 인명 피해로 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여름철 강수의 약 80%가 장마철에 집중되면서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려 지역 전체가 침수되고 사람들이 휩쓸려 갔다.
수도권 주민들은 아마 2022년의 기록적 폭우를 기억할 것이다. 115년 만에 최대 규모의 비가 사흘 동안 쏟아졌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운전자들이 버리고 간 차들이 물에 잠겨 있는 비현실적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간의 상식을 넘어서는 자연의 심통 앞에서 도시의 하수, 배수 시스템은 무력했다. 지하철역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잠기고 도로는 강이 됐다. 지하도로를 달리던 차가 침수되며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 반지하 방에서는 일가족이 익사했다. 이럴 때마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재해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한 인간의 오만이 부른 재앙이다. 산을 깎고 물길을 막아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넓히려고 하천을 복개하고, 높은 건물을 지으려고 지하를 파낸다. 땅을 시멘트로 덮어 빗물이 스며들 곳을 없앤다. 결국 자연은 물이 흐르던 길을 따라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간다. 인간이 만든 하수관이 자연의 물길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다.
기상청은 자연재해 앞에서 '이례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기존 기상패턴으로는 설명이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례적'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졌다. 기후학자들은 "우리는 뉴노멀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늘은 죄가 없다. '기후재앙'의 주범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원인이자 위기의 당사자가 됐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들이닥치고 태풍은 점점 더 거세진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 이것이 기후위기를 방관한 대가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자연은 정복당하지 않았다. 잠시 길든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제 자연은 인간이 저지른 기후위기라는 부메랑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우리가 뿌린 '탄소'라는 씨앗이 '기후재앙'이란 열매를 맺은 것이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외치지만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구체적 실행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탄소배출 규제를 피하려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방관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 옛말이 무색해졌다.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하늘은, 자연은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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