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극(登極)은 원뜻이 '임금의 자리에 오름'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나 지위에 오름'이라는 의미로 요즘에는 많이 쓰입니다.
정상 등극 / 챔피언 등극 / 득점왕 등극 / 왕좌 등극 / 신스틸러 등극 / 황제주 등극 / 최고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 등극. 등극이 쓰인 예입니다.
말뜻에 비추어 볼 때 정상, 챔피언, 득점왕, 왕좌 다음에 등극을 쓰는 것은 맞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 자리나 지위에 오른 것이니까요. 그러나 나머지는 그렇지 않기에 쓰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안 되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신스틸러(scene-stealer)가 뭔가요? (주연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조연입니다. '신스틸러이다 또는 신스틸러 됐다'라는 취지를 살리면 충분합니다. 명사로 끝내는 표현을 하려고 등극을 오용했습니다. [OOO, 신스틸러 등극] 대신 [OOO, 신스틸러 됐다] 하면 됩니다. 동사로 마무리해도 괜찮으니까요.
황제주는 주당 100만 원이 넘는 주식을 말합니다. 명칭에 '황제'가 있으니, 유일한 지위를 얻는 경우라면 등극을 쓸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황제주에 속한 주식이 이미 있고, 여기에 추가되는 거라면 등극을 쓸 수 없습니다. [황제주에 등극했다]의 대안 문장으로 [황제주 (지위, 자리)에 올랐다]를 제시합니다.
'최고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는 또 어떤가요? 애초, 사리에 어긋납니다. 하나일 수밖에 없는 최고의 히트곡을 여럿인 양 썼으니까요. 여기도 등극이 쓰일 곳은 아닌 게 분명하네요.
강하고, 세고, 선명하고, 자극적이고, 뭔가 있어 보이려는 강박과 특정한 낱말의 오남용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강박이 지나치면 직필(直筆.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사실을 그대로 적음. 또는 그렇게 적은 글)과 정론(正論. 정당하고 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에서 멀어집니다. 사전을 가까이 둬야 할 까닭이기도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연합뉴스 스타일북 2020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3.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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