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꾸준히"
지난 1년간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 관련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다. 처음 가이드라인이 공개됐을 당시에도, 때 이른 무용론이 불거졌을 때도, 계엄 사태 이후 정국이 출렁일 때도 금융당국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 단어를 반복했다. 의지 표명이기도 했지만, 때론 절박한 호소처럼 들렸다.
해묵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시작된 밸류업 프로그램이 출범 1년을 넘겼다. 시가총액 기준 코스피 과반 기업이 참여하고, 주주환원에 대한 시장 인식을 바꾸며 밸류업은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성과가 부진하단 지적에 흔들리지 않았다. 10년을 추진해온 일본도 2~3년 전부터 비로소 성과가 났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가혹한 평가에 반박하기보단 또 다시 이 말을 꺼냈다.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관되고 꾸준히 추진하겠다. 길게 보고 추진하면 외국인도 돌아오고 우리 증시도 재평가받는다."
사실 무서운 건 혹평이 아니다. 정말 두려운 건 '꾸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큰손인 외국인과 기관은 연초부터 밸류업 프로그램의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고 한다. 새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가 번번한 우리나라 정치 특성상, 차기 정권이 윤석열 정부의 브랜드인 '밸류업'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선 후보 모두 자본시장 선진화 필요성엔 공감한다. 증시 부양 공약도 한 보따리 내놨다.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모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지지율 1위인 이재명 후보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밸류 다운'이라고 지적하며 '코리아 부스터 프로젝트'라는 새 브랜드를 띄웠다. 이재명 후보도 의도적으로 밸류업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있다.
이번 주, 밸류업 우수 기업이 첫 선정된다. 밸류업 1기가 겨우 첫 사이클을 도는 셈이다. 이 표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1년간 힘을 쏟았던 밸류업 정책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한국 증시를 향한 시선은 선진국 기대보단 '말뿐인 개혁'만 가득한 나라란 냉소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극동 지방에서 자라는 모소 대나무는 씨를 심은 뒤 몇 년 동안은 10센티미터도 자라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그 시간 동안 땅속에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루에 수십 센티미터씩 자라 2주 만에 20미터까지 성장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호미질로 밭을 갈아엎으면, 자본시장 선진화는 '씨만 뿌리다 끝나는' 일로만 기록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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