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CBDC vs 스테이블코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5.26 18:08

수정 2025.05.26 18:27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 6월,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리브라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달러, 유로, 엔 등 주요 통화에 연동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페이스북 메신저 등을 통해 송금하고 결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리브라는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낮은 가격에 국제 송금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메타뿐 아니라 마스터카드, 비자, 우버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동참을 선언하고 자금을 투자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메타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리브라 발표 직후 여러 정부와 중앙은행은 강력히 반발했다. 28억명의 사용자를 가진 페이스북이 자체 글로벌 화폐를 발행할 경우 각국의 통화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리브라가 널리 사용될수록 달러의 독점적 지위가 약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자금세탁, 개인정보 유출 리스크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급기야 2019년 10월에는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가 마크 저커버그를 불러 청문회를 했다. 이러한 반발 끝에 리브라 프로젝트는 결국 좌초되고 만다.

리브라 좌초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CBDC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CBDC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말한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가운데 디지털 환경에서 화폐 활용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통화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중앙은행으로서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협업하여 CBDC 연구를 해 왔고, 중국은 수차례 CBDC 사용 테스트를 완료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다. 한국은행도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이름 아래 지난달부터 사용 테스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크게 변했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와 의회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1월 CBDC 미국 내 발행을 금지하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육성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며칠 전인 5월 20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율하는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를 사실상 통과시켰다. 리브라 프로젝트 소동으로부터 불과 6년 만에 입장이 바뀐 셈이다.

지니어스 액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이에 상응하는 달러와 미국 국채를 보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활용될수록 달러 및 미국 국채 수요가 늘어나게 하여 관련 산업 육성 및 미국 달러 지위와 국채 수요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CBDC를 추진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사용될수록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 수립과 집행이라는 한국은행의 목적 달성에는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통화주권 유지를 위해 CBDC 활용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사용을 마냥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미 서울 곳곳에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를 원화로 환전해주는 ATM이 설치되어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으로 원화 대신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한다는 보도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사용될수록 원화의 지위가 약해지고 미국의 시장 상황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 환경 속에 아무쪼록 통화주권을 유지하면서도 이용자 편익을 높이는 지혜로운 제도 수립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실시간핫클릭 이슈

많이 본 뉴스

한 컷 뉴스

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