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 방식의 '매입형 채무조정'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러한 '매입형 채무조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가 운영하는 '협약'·'합의형 채무조정'이다. 합의형 방식은 금융회사 등 채권자와 채무자가 사적 합의에 기반해 채무를 조정하는 구조로,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첫째, 매입형 방식과 달리 초기 연체 채무 및 위기 상황에 대한 선제적 지원이 가능하다. 초기 연체 또는 연체 이전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개입이 가능한 구조로, 채무자의 신용훼손을 사전에 예방한다. 둘째, 정부 재정 지원이 불필요하다.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자율적인 합의를 기반으로 하므로, 매입형처럼 대규모 국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고, 상시 운영이 가능하다. 셋째, 매입형 조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신용정보회사 등 외부 추심업자 위탁의 우려가 없다. 신복위가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므로, 채무자 입장에서 채무조정 과정을 신뢰할 수 있다. 넷째, 상담 중심의 채무조정을 지원한다. 상담을 통해 채무자의 상환능력과 취약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밀착 지원함으로써, 채무 탕감에 머물지 않고 채무자의 실질적인 경제적 재기와 자활을 돕는다.
물론 합의형 채무조정 역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상환능력을 보다 정교하게 반영한 감면 체계 마련과 채권 매각시 신용상 불이익 해소, 금융회사의 참여 유도를 위한 자산 건전성 분류 기준 개선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궁극적으로 상시적 협약·'합의형 채무조정' 체계의 확립은 채무자에게는 재기의 희망을, 금융기관에는 시장 원리에 기반한 채권 회수와 사회적 책임 이행의 기회를, 그리고 국가에는 재정 부담 경감과 금융시장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법이다. 정책당국이 이러한 채무조정 정책 방향을 견지하면서 금융업계와 긴밀히 협력해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가계부채 위협으로부터 한층 안전해지고 더 강건한 금융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욱 서울여대 명예교수·전 행복기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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