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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견고한 형식에 갇힐 리 없는 '페니키안 스킴'

뉴시스

입력 2025.05.29 06:04

수정 2025.05.29 06:04

웨스 앤더슨 감독 '페니키안 스킴' 리뷰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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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역시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다. 앤더슨 감독은 프레임 안 모든 걸 흐트러짐 없이 통제하려는 듯하다. 한 치 오차 없이 오와 열을 맞추고, 행간과 자간에 어떤 오류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새 영화는 그간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점진적 과부하 하듯 키워온 연출 완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뽐내는 것만 같다. 주인공 자자 코다가 욕조에 앉아 시거를 피우고 하녀들이 시중드는 모습이 길게 담긴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앤더슨식(式) 관리·감독은 어쩐지 과시적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될 수 없다. '페니키안 스킴'은 스타일이 아무리 화려해도 묻힐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역시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된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업가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가 암살 시도에 시달리자 사업을 딸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하고, 수녀가 되기 위해 수련 중이던 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을 설득해 일생일대 사업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한 여정을 함께 떠나며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페니키안 스킴'은 웨스 앤더슨 영화답게 이번에도 눈을 즐겁게 한다. 색·의상·동선·대사·소품·배경·구도 등 어떤 부문에서도 허투루 한 구석이 없는데다가 앤더슨 감독 전작에서 찾기 어려웠던 액션의 스펙터클까지 겸비했다. 베니시오 델 토로, 베네딕트 컴버배치, 스컬릿 조핸슨, 톰 행크스, 미아 트리플턴, 마이클 세라, 리즈 아메드, 브라이언 크랜스턴 등 초호화 출연진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 만족감을 준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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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적 경험은 웬만한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성취이긴 하지만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성실히 뒤쫓아온 관객에게만큼은 일정 부분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형식이기도 하다. 2013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완성형이 된 이 스타일은 '프렌치 디스패치'(2021)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그리고 넷플릭스와 합작한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시리즈(2023)를 거치며 정점을 찍었다. 아무리 독창적이라고 해도 10년 이상 반복 되면 한계효용이 가속화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 작품 세계에 매혹돼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다수이겠지만 예전만큼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웨스 앤더슨 영화는 감각적이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어디서도 나온 적 없는 이야기를 매번 새로 내놓음으로써 껍데기만 그럴싸하다는 비판을 가벼게 틀어막는다. '페니키안 스킴' 역시 그렇다. 최근 앤더슨 감독 필모그래피를 향한 불만 중 하나는 관객이 스토리를 직관적으로 따라가기에 벅찬 경우가 많다는 것. 특히 비유·상징·대구·반복이 끊임 없이 펼쳐지는 전작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페니키안 스킴'은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화법을 보여주고, 웨스 앤더슨 이야기 특유의 복잡한 관계와 다단해보이는 관계 변화 양상을 진솔하게 풀어내 관객을 납득하게 한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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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페니키안 스킴'은 아버지와 딸에 관한 얘기다. 앤더슨 감독은 1950년대 유럽 재벌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등을 떠올리며 이 이야기를 시작해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자기 자신, 레바논의 사업가였던 장인이 딸과 맺은 관계를 연결해가며 이 스토리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페니키안 스킴'은 그저 성공을 위해 내달리던 아버지가 버렸던 딸을 다시 찾은 뒤 사랑을 느끼고 진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고,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뒤 세상을 버리고 싶었던 딸이 그 못된 아버지에게서 일말의 가능성을 짐작한 뒤 세상을 향한 애정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마음 속 사랑을 실현해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페니키안 스킴'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애스터로이드 시티'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시리즈 모두를 이어 받으며 웨스 앤더슨 이야기의 세계관(스타일의 세계관이 아니라)을 다시 한 번 연결해 간다. 이 영화는 행복했었다고 믿고 있는 한 시절의 감각을 되돌려 보려 한다.
삶을 일시 정지해야 한다고 믿는 어떤 사람이 어떤 시기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낸 모험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붕괴된 마음에 사랑을 다시 채워넣으려 하고, 운명을 뛰어넘어 다시 태어나보려 하며, 끝내 다가올 죽음 앞에서 구원 받고자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무리 느슨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연대할 때 피어나는 가능성을 보려고 한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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